두 달 남은 월드컵대회 준비의 부실이 여기저기서 지적되고 있다. 그 중요성에 비추어 완벽준비를 외치고 무언가를 했지만 합격점을 줄 수 없는게 한두가지가 아니다는데 인식을 같이 한다.
88서울 올림픽 때는 단독개최라 돌파구가 그런대로 있었다. 이번엔 한일공동개최라 비교가 불가피하다. 모든 면에서 한국이 뒤지리라는 것은 부연설명이 필요치 않다. 국민 소득수준도 낮은 터에 국민의식수준도 차이가 많다. 한마디로 우리가 일본을 따라 잡기엔 역부족이란 결론을 내릴 수 뿐이 없는 자체가 서글픈 현실이다.
지난 3월 16일 한 신문에 「보도블럭 할아버지 오용현」님 이름으로 실린 한 호소문이 눈길을 잡아끈다.
「부실보도 정비하여 보행권 보장하고 월드컵 맞이하자」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었다.

외국의 모 권위있는 신문사 한국특파원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 있는 어머니가 한국에 있는 아들을 보러 왔다가 보도블럭에 걸려 넘어져 크게 다쳐 관광이니 쇼핑이니 꼼짝도 못하고 누워만 계시다 돌아가야 했다. 보도블럭의 요철이 너무 심해서 발바닥이 아프고 다리에 충격을 줄까봐 조깅을 못했다. …보도블럭도 제대로 깔지 못하는 나라에서…(한국의 권위있는 모 일간지 소속 월간잡지에서)를 연상해 보자. 국제적 수치를! 걷고 싶은 거리는 “오직 안락하고 편리하게 걸을 수 있는” 보도를 만드는 것뿐이다.」

위와 같은 내용이다. 얼마나 눈여겨 봤을지는 모르지만 부끄러운 우리 현주소의 하나이다.
이러한 일이 생기는 것은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만연된 병폐의 하나인 적당주의의 산물이다. 무엇이든지 「적당히」, 「대충대충」, 「이정도면 됐지」, 「뭐 어때」 같은 망국병이 부실공화국의 딱지를 떼지 못하게 한다.
우리 건설회사들이 외국에 가서 토목이나 건축공사를 할때는 어찌나 감리가 까다로운지 감히 부실공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원칙과 규정이 지켜지지 않고, 또 확인감독과 시정조치가 허술해 부실과 불량이 판을 친다.
우리가 보도블럭 하나 제대로 깔지 못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부천뿐이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보도블럭 공사는 정말 엉망이다. 우선 보도블럭 깔린 자리가 울멍줄멍이다. 일매지게 편평하지가 못하다. 한마디로 생겨먹은대로 적당히 깔았기 때문이다. 어떤 곳은 기울기가 심한 곳도 있고 도로경계 연석보다 낮게 된 곳도 있고 튀어나온 지장물이 있어도 그대로 둔채 깔아 놓기도 했다.
다음에는 보도블럭의 재질이 문제다. 우선 미려하지 못하고 견고하지 못하다. 시멘트로 되어있는 보도블럭은 디자인과 색상이 저질스럽다. 보행자의 정서가 꺼칠해지도록 미관이 좋지 않다. 또 얼마 지나면 깨지고 으서진게 상당히 많다. 마모되면 시멘트는 벗어지고 모래들이 드러난다. 또 천편일률적인 설계로 되어있어 특성이 없다. 바꾸어 말하면 예술적이지 못하고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의식도 문제다. 보도블럭 위를 차량들이 드나들다 보니 훼손이 심할 수밖에 없다. 인조대리석, 아스콘으로 깔린 곳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부천시는 북부역에서 원미구청까지 양쪽 보도에 그림타일을 일정한 간격으로 장식해 놓았다. 중앙극장 아래쪽의 한 곳은 그림타일이 완전히 깨져 나갔고 두군데는 깨져 있기도 하다. 이것도 부실시공과 시민의식의 실종에서 비롯된 사례의 하나이다. 이와 같은 보도블럭의 부실시공은 감리나 준공검사시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면에서 담당 공무원의 직무유기를 문제삼아야 한다. 시공, 재질, 디자인등 모든면에서 일본과 비해 너무 부실하다는데 서글픔을 느낀다.
보도블럭도 제대로 깔지 못하는 한국, 우리 부천은 보도블럭을 제대로 까는 곳이 되어야 한다. 다른 곳과 색상과 디자인, 그리고 재질을 특색있게 달리해 깔았으면 한다. 부천 시공업체는 부실하게 보도블럭을 깔았다가는 망신을 당하고 제대로 재시공을 해야만 한다는 원칙과 전통을 세울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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