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제5회 수주문학제



<논개> 변영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당콩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고향> 변영로

여러해 만에 그립던 교향을
찾았더니 사람도 낯설고
마을 옛 모습 씻은 듯 하구나.

햇볕 사립짝에 졸고졸던 고향
키당다리 어송화들 너머로
기웃대던 고향...
앉은뱅이 채송화 섬돌 밑에
기기만 하던 고향...
눈 유난히 어진 소 밭 갈면서 졸던 고향
눈딱부리 개구리는 모른다는 듯
인사성 없이 한창 재준 체 풍덩 물속
뛰어들던 그 고향...
점잖은 체 곧잘 서 있던 껑쩡한
흰 백로는 뉘 저 잡을세라
삥 날아가던 고향...

아, 그리웁고나 평화롭던 옛 고향이여.
거칠고 쓸쓸코 요란해진 내 고향이여.
이렇고 저렇고 턱없이 서투르기만 하네
반갑던 그 얼굴 정다웁던 그 음성
이제엔 어디메로
사람도 바뀌고 마음 옛 모습 찾을 길 없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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