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석 한국평생사회교육개발원 이사장

 

《정의란 무엇인가》란 타이틀로 유명한 이 책의 원제(原題)는《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이다. 무엇을 하는 게 옳은 일이고 정의로운 것일까. ‘정의’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지만, 선뜻 이 질문에 대답을 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

 

과연 어떤 행동이, 어떤 판단이 옳은 행동이고 옳은 판단일까. 저자인 마이클 샌델 교수가 이 책에서 끊임없이 던지는 물음이다. 그리고 공동체, 도덕, 사회적 미덕 등과 관련된 많은 생각을 풀어 간다. 명쾌한 해답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질문이 더 많은 책이다. 무엇이 올바른 길인가를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찾고 있던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꽤나 많았던 것 같다. 결국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질문에 공감하며 함께 고민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펼쳐 들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한국에서 자신의 책이 사회적 이슈가 된 데 대해 깜작 놀랐다는 후문이다. 인문학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밀리언셀러가 된 데다, 한 대형 서점에서는 개점 이래 인문 분야 도서가 처음으로 연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정도였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이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적 갈망이 컸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끈질긴 반론 통해 ‘정의’ 재정립 유도

 

‘정의란 무엇인가’는 잘 알려진 것처럼 마이클 샌델 교수가 강의하는 ‘정의’ 수업을 바탕으로 엮은 책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 책에 소개된 것과 마찬가지로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문답을 주고받는 수업 방식으로 유명하다. 학생들에게 마이클 샌델 교수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를 던지고 의견을 묻는다.

 

학생들은 자신의 견해뿐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사회 정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야기를 약간 비틀어 다시 묻는다. 앞서와 똑같은 대답을 하는 것이 맞긴 하지만, 같은 대답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질문이다. 이처럼 마이클 샌델 교수는 학생들을 딜레마에 빠뜨리는 수업 방식으로 스스로 해답을 이끌어내도록 한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얼핏 떠오른다. 소크라테스도 문답식 대화와 토론을 통해 깨달음을 이끌어내는 데 산파술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막연히 생각해 온 정의에 대한 끈질긴 반론을 통해 정의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도록 유도한다. 정의와 관련한 각종 딜레마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주의,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 존 롤스의 철학, 공동체주의를 정의라는 개념에 연결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무려 2000여년의 시차가 있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주장을 현실에 적용하면서 다양한 문제에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정의의 원칙을 꼼꼼하게 짚어 준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 책에서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탐색한다. 그는 정의를 공리나 행복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거론한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는 세 번째 방식에 가깝다면서,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 만들 수 없다고 덧붙인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도덕, 의무, 공동체, 존중, 행복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이들 단어를 통해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효과적인 답변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이들 단어 없이는 정의를 언급할 수 없다는 의미와 통한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양심이나 관습에 비추어 스스로 지켜야 하는 도덕,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면 정의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당연히 공동체의 구성원끼리 서로 존중하는 자세도, 구성원들의 행복도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가 펼치는 논리의 핵심은 공동체의 사회적 가치를 정의를 바탕으로 다시 살려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정의 논쟁’… 시·공간 초월 끊임없이 이어져

 

정의에 대한 논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만약 한 가지 원칙이나 절차가 규정되어 있다면, 정의로운 사회나 좋은 삶을 만드는 과정에서 논란이 생길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그런 원칙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대형마트와 재래시장,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갑과 을 등 어떤 논란을 벌이든 정의는 서로 대립하는 여러 개념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정의는 올바른 분배뿐만 아니라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경제민주화도 마찬가지다. 갖가지 문제나 지나치게 세분화된 요소까지 판단할 경우 본질을 흩어뜨릴 수도 있다. 핵심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소득양극화와 공정 거래 질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경제민주화가 사회적 정의 구현을 위한 디딤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법을 만드는 과정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수의 정의’가 아닌 ‘보편적 정의’에 바탕을 둔 법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다수의 정의’는 누가 다수가 되느냐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데다, 다수의 행복도 상황에 따라 변하므로 다수의 정의를 보편적인 정의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모든 일에는 정의가 존재하고, 정의는 바른 길로 이끄는 진리이다. 카이사르에 밀려나 문인으로 활동했던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사람이 서로 해치지 않게 하는 것이 정의의 역할”이라고 했고,《정의란 무엇인가》에도 등장하는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는 내가 어떤 위치에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정의는 어느 길로 들어서든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치는 주제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함께 읽을 만한 책은 어떤 게 있을까.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정의의 한계≫, 이택광 경희대 교수 등 4명이 함께 펴낸 ≪무엇이 정의인가?≫, 김호 경인교대 교수의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를 읽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우선 ≪정의의 한계≫는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소개한 것보다 좀 더 심도 있는 ‘정의’를 접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율과 자유의지, 선택, 올바른 정치까지 맞닥뜨릴 수 있는 이 책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철학 지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이 정의인가?≫는 정의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응답서라고 할 수 있다. 정의에 열광하는 한국 사회의 현상, 마이클 샌델 교수가 말하는 정의에 대한 이해와 비판이 함께 담긴 책이다.

 

그리고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는 200년 전 정약용이 꿈꾼 ‘정의로운 나라’를 다룬 책이다. 김호 교수는 이 책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뤄 나가려면 중앙 관료는 물론, 지방의 공무를 담당한 사람들까지 솔선해서 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관리들의 각성을 촉구한 정약용의 주장을 부각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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