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 칼럼]

기독교에서는 정통과 이단을 매우 중요시 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보면 이단이라고 해도 정통 같고, 정통이라고 해도 이단 같아 보인다. 예배를 드리는 형식이나 강론이나 설교나 예배당의 외형이나 다른 것이 별로 없다. 기독교면 모두 같아 보인다. 그런데 왜 기독교도들은 정통과 이단에 대해서 철천지원수처럼 대할까? 다른 종교를 보면 불교와 천주교가 화기애애하게 지내고 있다. 기독교는 그럴 수 없는 것일까?

 

기독교가 말하는 정통과 이단은 다른데 있지 않다. 정통이란 하나님을 위한 신앙이고, 이단이란 인간을 위한 신앙이다. 성서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한 신앙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웃을 위한 신앙생활이 이루어진다. 이것을 정통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기를 위한 그리고 이기집단을 위한 신앙을 이단이라고 한다.

 

이기집단에는 우두머리가 있다. 그 우두머리를 하나님 보다 더 철저히 섬긴다. 이를 교주라고 부른다. 자기 개인을 위한 이기적 집단의 신앙에 속하지 않은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이나 교주의 은총밖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자기의 욕심을 채워주는 대상 그 이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신앙의 영성을 악령의 사람이라고 한다. 영성이란 자기가 믿는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에서 오는 정신이기에 하나님의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신앙자를 성령의 사람이라고 하고, 이단의 정신을 따르는 사람의 영성을 악령의 사람이라고 한다. 그 사람의 신앙의 대상에 따라서 그의 영성은 결정되고, 그 사람의 영성에 따라 그의 인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진도 앞바다에 수많은 꽃다운 생명들이 수장되어 있다. 이간이 사는 세상에 사고와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사고와 문제가 있을 때, 어떻게 대처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이 나타난다. 그 나타나는 인격은 그의 영성에 영향을 받는다.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선장은 배와 배에 탄 승객들의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퇴선 명령은 배에서 함께 종사해 온 사람들에게만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승객들에게는 제자리를 지키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고 한다. 이럴 수가 있을까? 배가 기울어지고 가라앉고 있다. 배의 선원들만 탈출을 하여 살아났다고 하는 이 배의 선장의 인격이 도대체 정상적인 인격인가? 이러한 철저한 이기적 인격은 어디서 영향을 받았을까? 바로 그들의 영성에 있다.

 

기독교가 수십년 동안 그토록 이단이라고 지목하고 이단이라고 경계하여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 집단 ○○파라는 집단이다. 그 ○○파는 아예 자신들이 경영하는 사업체에는 자기들의 신앙이 투철한 사람들만 채용을 한다고 한다. 이단이란 이기적이며, 교주를 신으로 모시는 집단이라고 보니 결국 남의 생명에 대한 책임이나 자기들의 역사적 의식이나 타인을 위한 희생이란 아예 티끌만큼도 없다.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자기부터 살고보자는 생각이 지배적일 수밖에는 없다.

 

정통 기독교는 십자가를 표지로 삼는다. 십자가는 사람 즉, 자기희생과 헌신을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진리로 알고, 믿고, 실전한다. 그래서 형식은 이단이나 정통이나 다를 바가 없어 보이지만, 이단에 속한 신자나 정통에 속한 신자의 영성과 인격은 전혀 다름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나무는 열매를 보면 안다. 자기희생의 열매를 맺어야 바른 종교요 정통기독교이다. 정통교회를 다니는 사람의 영성이 성령의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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