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인간이 홀로 사는 것을 가장 먼저 싫어했던 분이 창조주셨다. 그래서 아담을 잠들게 하고, 갈비뼈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의 고백은 ‘뼈 중의 뼈요, 살 중에 살이로다.’였었다.

 

앞으로 2020년이 오면 상당수의 나 홀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한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자신을 위해서 살겠다는 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홀로 사는 것이 가장 자기를 위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홀로 살도록 창조되지 않은 인간이 홀로 살겠다고 주장해 보았자 함께 살기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인간의 본능 중에 가장 강한 본능은 성적 본능이라고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말했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그리움, 그리고 만나고 싶은 마음, 사랑하고 싶은 강한 욕구, 이러한 본성적 욕구를 인간에게 장착한 창조주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으리라. 인류 문화 예술의 주제는 대부분 ‘사랑’이라는 것을 누가 부정할까? 그리고 인류를 지금까지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 역시 사랑이라는 것을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침에 출근을 하는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물어보라. 왜 직장을 다니느냐고 말이다. 하나 같이 가족을 위해서 땀 흘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직장을 다닌다. 노동자의 땀은 인류를 더욱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뿐만 아니라 사랑이 없으면 어찌 이 땅에 인류가 태어나고 살아갈 수 있을까? 여성의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이 해산의 고통이다. 이 해산의 진통이 있을 때에는 다시는 자녀를 낳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태어나 방긋 웃는 아기의 모습을 보면, 해산의 진통은 사라지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그래서 지구촌에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홀로 살아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홀로 양육하는 자녀의 인격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예부터 ‘애비 없이 자란 자식은 호로자식이다.’란 말이 있다. 가장의 엄한 훈계가 없음을 경고한 것이리라. 남성 특유의 의지 부분이 약한 아들로 키울 수밖에 없는 것이 여성 홀로 자녀를 키우는 약점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홀로 살면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홀로 사는 것이 둘이 사는 것보다 결코 편하지 않다. 물론 오늘의 주관이 강한 개인주의가 되어서 두 사람이 살면 합의나 협력이 힘든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현대인의 자기 개성 존중과 자기 삶의 고유성에 대한 가치부여는 유별나게 강하다. 그러니 ‘함께 살 수 있을까?’ 라고 주장도 한다.

 

또한 서로 다름에서 오는 조화 때문에 행복할 수도 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어찌 그리 달라도 부부가 다를까? 그런데 잘살고 있다. ‘다름’이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홀로 사는 것은 젊은 날은 그런대로 재미를 향유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찾아오는 고독이라는 마음의 병이 사람을 어렵게 한다. 고독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주장한 철학자도 있지 않는가?

 

30년을 홀로 산 공무원 여성이 있다. 근래 와서 태도가 달라졌다. 평소에 남성을 경멸하고, 남성보다 여성이 더욱 훌륭하고, 유능하다고 주장하던 그였다. 평생을 홀로 산다고 외치던 그녀가 지금은 은근히 마음에 맞는 이가 있으면 결혼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이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직장에서 은퇴를 할 것이다. 혼자 24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가 겪어야 할 외로움보다 차라리 함께 살아서 어려움을 겪는 편이 낫다고 선택을 한 것이다.

 

강이 바라보이고, 뒤에는 산이 병풍처럼 쳐 있는 전원주택에 살던 부부가 갑자기 애지중지하던 전원주택을 내놓았다. 그 이유는 우울증 때문이다. 남편이 직장이나 사업으로 외출하고 나면, 부인 혼자서 집을 지킨다. 이웃은 아무도 없다. 키우는 개 두 마리 외에는 움직이는 존재는 없다. 처음은 편하다. 사색을 즐겼다. 독서도 했다. 텃밭도 가꾸고, 매우 분주해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은 그를 잠 못 자게하고, 심지어는 죽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들어 삶의 위협을 자기 스스로가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홀로 사는 세대가 늘어가는 것, 그러나 선택은 자유인 것임을 감안할 때, 단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더불어 사는 것이 보편화된 사회이기에 보편적 이해로 홀로 사는 삶을 논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저작권자 © 부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