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기독교가 전래해오면서 몇 가지 한국 문화에 도전적 가르침이 있었다. 먼저 담배를 피우지 말자는 가르침이었다. 서양선교사 중에는 의사도 있었다. 한국 사람의 담배 흡연이 심각한 수준으로 보여 졌던 것이다.

농경사회였던 시절의 담배는 건강의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다. 긴 담뱃대에 잔뜩 잎연초를 부셔서 넣는다. 그리고 담뱃불은 부싯돌로 불을 붙인다. 그리고 담배를 피운다.

사랑방 안에 서너 어르신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면 삽시간에 온 방안은 담배 연기로 가득해진다. 그 담배 연기 속에서 바둑을 두고, 책을 읽고, 누어서 쉬기도 한다. 아예 방안 도배지는 까맣게 변한다. 도배지뿐만이 아니다. 담배를 피우시는 어르신들의 옷 색깔은 담배 연기에 찌들어 있다.

그 당시에 수명이 짧았던 것도 담배로 인한 여러 가지 가족 병이 발병하였을 것이다. 여기에다가 술을 마시는 것은 일상이다. 아침에 기상하면 웬만한 가정에서는 술을 한잔 하신다. 아예 집에서 막걸리를 제조하였다. 술은 국가의 전제품이라서 단속을 하였지만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식습관이라 막을 수가 없었다.

단속 때문에 막걸리 옹기를 뒷산에 묻어 놓고 몰래 퍼다 먹는다. 절제가 부족하였다. 과음이 대부분이었다. 술이 발단이 되어 부부싸움과 동네마다 저녁이 되면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술로 인한 건강을 해치는 일은 이루말로 할 수 없었다. 알코올 중독은 물론이고, 술로 인하여 각종 질병에 걸린 사람도 그 수효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술에 취한 가장의 폭력 역시 가정의 행복을 모두 빼앗아 가버렸다. 농경사회에서는 이혼은 불가능했다. 여성이 홀로 서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여성은 그래서 자기 몸을 의탁하기 위한 첩으로 가는 수도 있었을 정도이니 어찌 감히 이혼을 할 수 있을까?

밤마다 술에 취해 휘두르는 남편의 폭력에 죽은 사람도 한 둘이 아니다. 가정 불행의 원인이 술이었다. 서양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술과 담배는 한국의 행복을 빼앗아가는 가장 흉악한 범죄로 보여 졌던 것 같다. 그래서 신앙적 차원도 물론 있겠지만, 진정 한국인을 사랑하는 뜻에서 술과 담배를 끊자는 가르침을 세운 것 같다. 그 이후부터 교회 다니는 사람의 신앙은 술과 담배를 기준으로 삼았다. 기독교인 하면 그 표지가 술과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술, 담배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특정 종교의 가르침이 아니다. 국민을 사랑하는 지도자나 정치인, 그리고 국가라면 당연히 금연을 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저기에 흡연구역이 설정되어 있고, 법으로 제정하여 금연에 대한 캠페인과 법적 강제제제 조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술은 아직 법제화 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술 문제로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다. 장성(長成) 한 분이 불명예 전역을 하였다. 그 역시 술로 시작된 불상사였다. 술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성이 마비된 사람이 운전을 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제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술에 취한 사람들이 하지 말아야 할 분야를 폭넓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특히 대중화된 자전거 역시 음주 후 자전거를 타는 것은 제제할 필요가 있다. 자전거 사고가 심심찮게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술로 인한 발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간장을 헤치는 주범이 알코올이다. 그 외 모든 신체에 크나큰 해를 주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여성들의 음주률이 높아지고 있다. 식당에서나 T.V를 보면 술을 마시는 것을 예의쯤으로 작가가 표현하고 있고, 술을 먹는 장면이 보통 방영되고 있으며, 연속극에서도 술을 먹는 장면을 보통 방영하고 있다.  매스컴은 술이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지나친 방송을 삼가야 한다.

술로 인한 건강보험의 손실을 생각하면 주류세와 담배에 건강보험료를 징수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공통으로 사용해야 할 건강보험을 술, 담배를 하는 사람들이 발병률이 높아 과다소비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전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을 특수한 계층 사람들이 소진시키고 있는 것이다. 금연과 절주 내지는 금주는 전 국민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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