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권 박사의 도강칼럼②

▲ 발음 : SeK Kheper-Nis Neter-medou Neb M Ka A Mout Hat Ib Z-imyra 해석 : 당신의 그릇을 만든다 함은 모든 신들의 역능을 생성시키길 바라는 것인데, 이는 한(恨) 맺힌 마음을 대중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부천신문]세월호의 아픔이 아직도 치유되지 않는 것은 “사회적 적폐(積蔽)를 철폐하자!”는 강령이 더 큰 은폐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능과 부정이 춤을 추는 가운데 세월호의 어둠 속에 갇힌 어린 영령들의 넋(Ka;)이 구천을 떠돌고 있다.

세월호의 유가족과 시민들이 알고 싶은 진실은 무능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우리가 생생하게 목격된 구난 구조의 무능이 어떠한 경로로 조직적으로 일어났으며, 또한 그 이면에 그 무능에 대한 은폐가 어찌 그렇게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였는가에 대한 진실 규명이다.

“안다는 것”은 레크(ReKh;), 즉 어두운() 부분()을 혹은 “쓰여지기를 꺼려하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것을 말하기 전에 “사회적 적폐”라고 선언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건에 대한 진실은 봉인된 파피루스로 재현된 문자()와 같다. 이것에서는 ‘쓰여진 내용’을 눈으로 볼 수 없다. 세월호의 진실 규명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한, 진실의 그림은 언제나 봉인되었다고 봐도 결코 모난 생각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봉인을 해제하고 포트폴리오 통 속의 그림을 꺼내 보았다고 해서 진실 규명의 목소리가 사라질 수 있을까? 말하자면, 우리가 알려고 하는 진실이 우리에게 물질적일 수 있을까? 여기서 물질적이라 함은 납득 가능성뿐만 아니라 다시는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특히 후자의 문제는 단순히 봉인의 해제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쓰여지지 않은 내용”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과연 “쓰여지지 않은 내용”이란 무엇일까? 이집트 문명의 트리니티 사상 속에 그 단초가 있다. 창조의 신이자 은둔의 신 아몬(Amon)과 그의 부인 무트(Mout), 그리고 그의 아들 콘수(Khonsou)의 삼위일체에 있다. 이를 수(nombre)와 기능(fonction)과 질(qualite)의 트리니티로 유비시켜 생각하면, 좀 더 명료해 진다. 그러면 “쓰여지지 않은 내용”은 수와 기능 사이에서 나오는 질(質)이다.

다시 말해서 “쓰여지지 않은 내용”이란 인식되기 이전의 내용, 정확히 말해서 인식이전의 물질(Khet:)이다. 그리고 이는 언제나 대중들의 삶과 그들의 애환과 연결되어져 있었다. 그래서 이것은 뇌의 관념으로 짜 맞추어서 인식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케트의 시뮬라크르(KheT), 즉 테크(TeKh;)는 “마음으로 느끼는 것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테크는 술단지()를 뜻하는데, 이는 심장(ib;)과 상징적 기능 속에서, 즉 무트(Mout)의 작용 속에서 연결된다. 인생의 신비는 술 취하면 더 술을 요구하듯 심장의 지성도 열등한 카(Ka)와 우등한 카(Ka)에 따라 차별적이다.

이는 대중의 슬픔에 대한 포용력에 따라 결정된다. 무지(khem;)에 사로잡힌 열등한 카는 자신의 무능력과 그것에 대한 부정() 속에서() 어두움()에 쌓여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중의 슬픔에 대한 무지는 타인의 슬픔에 매정하고, 삶을 메마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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