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권 박사의 도강칼럼⑤

[부천신문] 거대한 뱀 아포피스(apophis;)는 태양 빛을 삼키는 어둠의 힘, 신들의 역능을 무화시키는 무능력의 상징이다. 매일 태양이 떠오르는 것은 밤중에 아포피스와의 투쟁에서 태양의 신 라(Ra)의 승리 때문이라고 고대이집트인들은 믿었다.

태양신 라는 저녁에 배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는데 아포피스는 매일 밤 그의 운행을 방해한다. 하지만, 질투의 신 세트(set)의 도움 속에 태양신 라는 매일 아침 다시 떠오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 신화체계는 포톨레마이오스의 <알마케스트>에 등장하는 지구중심설의 원천이었다.

그 후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이 나오기까지 무려 1400여년이 걸렸지만, 이와 같은 신화체계를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아포피스가 태양의 운행을 방해한다는 것을 지구의 운행을 방해하는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구궤도와 6∼7년 주기로 접하는 소행성(63빌딩 크기의 검은 철광석)을 2004년에서야 아포피스 소행성이라 이름을 붙였다. 아포피스 소행성의 접근에 고양이가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집트신화에는 고양이로 형상화된 바스테트여신(Bastet;)이 아포피스를 칼로 죽이는 장면이 있고, 이 여신을 숭배하는 도시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포피스는 생명체의 존재보다 앞선 존재, 즉 우주의 혼돈을 야기하는 원인적 역능이기 때문에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그래서 때로는 하마로, 사막의 영양으로, 거북이 등으로 재현된다. 하마의 경우는 수중생물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사막의 영양은 더울 때는 몰려다니다가 추울 때는 떨어지는 근성이 있고 거북이는 나일강 범람을 예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철학적으로는 비존재, 비실존의 상징으로도 작용되는데, 이는 인간이 주물주의 가래침을 흙으로 빚어 뱀을 만들고 이름을 붙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최초로 창조한 뱀이 바로 신들을 위협하는 아포피스였다.

태초에 신이 지구상의 생물을 만들었고 인간에게는 이름을 붙여 그것들을 통제하도록 권능을 주었다. 그런데 인간은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신처럼 되고 싶었다. 하루는 조물주가 노파로 변장해 인간이 이름을 붙여준 생물과 놀고 있는 것을 보고, 그 노파의 가래침을 빚어 뱀을 만들고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이름 없는 존재”가 웅크리고 있다가 조물주의 발등을 물어 조물주를 아프게 했다. 이에 조물주는 인간에게서 자신과 같은 창조력을 제거하기 위해 생물에 대한 통제권을 특정한 때에 적절한 이름을 붙여야만 발휘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인간이 생물에 대한 통제권에 매몰되어 신의 고유권한인 창조력을 회수하기 위한 신의 임시방편이었던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서 창조역량을 회수하려한 까닭을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의 위기에 대한 신적 대응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통제되지 않는 인간 욕망”이야말로 아포피스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집트신화가 아닌 우리의 현실에서는 “통제권한 자가 통제를 행사하지 못하는 무능”이야 말로 아포피스를 만들어 내고 있다.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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