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부천국제만화축제 찾은 로랑 멜리키앙

▲ (오른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로랑 멜리키앙, 이도헌 만화가, 염기남 기자.

[부천신문] 제18회 부천국제만화축제가 지난 16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의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번 만화축제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만화! 70+30’라는 주제로, 지난 70년의 삶의 모습을 조명하고, 앞으로의 30년에서 만화가 어떤 역할을 할지 조망해 그 의미를 더했다. 

세계전역의 다양한 만화와 관계된 인사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특히, 이번 만화축제에는 지난 1월 7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희생자가 발생한 샤를리 앱도 사건을 비롯해 표현의 자유를 논의하기 위한 심포지엄 ‘나는 만화가다’도 열렸다.

부천신문은 심포지엄 ‘나는 만화가다’ 참석차 만화축제를 방문한 프랑스 만화 평론가 로랑 멜리키앙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인터뷰는 부천신문에 만평을 연재하고 있는 이도헌 만화가도 함께 참여해 만화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생생한 대화도 이어졌다. 

인터뷰에서 로랑 멜리키앙은 “만화는 기억과 역사를 지우는 권력자들에 맞서 기억을 되살리는 유용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의 위안부 문제도 정치와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잊혀지고 있다”며 “유럽에서도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나 오스만 제국의 아니메니아인 학살의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역사에 가리워진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 만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부천국제만화축제가 해방 70년의 역사를 권력자의 편이 아닌 민초들의 아픈 역사속에서 재조명한 점이 인상 깊었다”며 “기억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8월 13일 오후 2시 한국만화박물관 2층 인터뷰실에서 진행된 것이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염기남 기자 : 부천은 이번이 몇 번째 방문인지. 처음이라면 인상은 어떤지요.

로랑 멜리키앙 : 한국방문이 처음입니다. 아직까지도 오지 않은 것만 같습니다. 한국이나 부천이라는 도시에 대한 느낌에 대해서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부천에 와서, 그리고 만화축제에 초대되어 너무 기쁩니다. 듣기로는 서울과 인천을 잇는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만화축제도 대단히 놀랍게 보고 있습니다.

염기남 기자 : 최근 전해들은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 깊은 인상을 받으신 일이 있다면 설명해 주십시오.

로랑 멜리키앙 : 저는 만화전문 기자이기 때문에 한국적 상황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합니다. 만화에 관한 사건에 관심이 많을 뿐입니다. 기자보다는 평론가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한국적 상황에 대한 기억이라고 한다면 1년 반전에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한국의 위안부와 관련된 전시에 참여한 것이 떠오릅니다.

당시 일본의 극우단체들이 찾아와서 난동을 부렸던 상황도 떠오릅니다. 올해 부천만화축제의 주제가 기억과 맞닿아 있듯이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 기억을 사살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어 마음이 불편했었습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서 유럽에서는 나치에 의한 유태인들의 학살이나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학살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2차세계대전동안 일본의 성노예였던 위안부에 대한 기억과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는 셈이지요. 한쪽에서는 만화로서 기억을 되살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만화로 기억을 말살시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평론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 로랑 멜리키앙은 만화는 기억을 말살시키려는 사람들로부터 기억을 지켜내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기남 기자 : 방문목적이기도 한 샤를리 앱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지요. 한국에는 테러사건으로만 알려졌습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로랑 멜리키앙 : 샤를리 앱도는 잡지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만화가 혹은 만평가 그룹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 발행이 시작됐고, 샤를리 앱도라는 이름은 1970년대부터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권력을 풍자하고자 합니다. 정치, 경제, 남여평등, 언론에 대한 풍자, 종교에 대한 풍자 그 모든 것들이 그들의 관심사입니다.

프랑스에서 그들은 저널리스트나 만화가로서 스타가 아닌 친구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항상 권력자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작업을 해 왔지만 테러사건 이후 프랑스인들의 거의 대부분이 “나는 사를리 입니다”라고 나선 이유입니다.  

프랑스인들은 아주 친한 친구들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만평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친근한 이미지를 잃어버렸다고 느꼈습니다. 잃어버리면서 ‘이것을 사랑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봅니다. 또, 이러다가는 표현의 자유를 잃을 수 있다는 공포도 느꼈습니다. 본질적으로 테러리스트들은 사이비 종교의 일원으로 자신의 룰을 남들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입니다.

염기남 기자 : 모든 권력을 풍자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샤를리 앱도가 자본이나 권력보다는 이슬람에 대해 칼날을 겨누는 이유가 있습니까. 종교문제 외에도 다른 사회갈등도 많을 텐데요.

로랑 멜리키앙 : 그 문제는 이번 컨퍼런스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테러사건이 촉발된 샤를리 앱도의 만평은 종교에 대한 풍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슬라미즘(Islamism)을 풍자한 것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로서 특정 집단의 룰을 공공의 영역에도 강요하려는 생각입니다.

프랑스만의 특수한 점일 수도 있습니다만, 프랑스에는 라이시떼(laïcité)라는 원칙이 있습니다. 교육이나 행정 어디에도 사적영역인 종교를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프랑스 혁명이후 세워진 프랑스 공화주의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이와는 다른 또 하나의 문제를 설명하고 싶습니다. 다른 관점에서는 이슬람의 모하메드 성인을 어떻게 그릴 수 있느냐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당신에게(이도헌 만화가를 보며) 일본의 극우단체가 찾아와 천황을 그리지 말라는 요구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 권리가 있을까요. 그런 것은 표현의 자유의 영역입니다.

▲ 인터뷰에 함께한 이도헌 만화가가 로랑 멜리키앙에게 세월호 참사를 기록한 책을 선물하고 있다. 이날 이도헌 만화가와 로랑 멜리키앙은 만화의 사회참여와 그 과제에 대해서 논의했다.

이도헌 만화가 : 먼저 테러사건으로 사망한 사를리 앱도의 직원들에게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혹시 세월호 참사를 아시는지요. 저도 만화를 통해 그 당시의 기억들을 되살리며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듭니다.

로랑 멜리키앙 :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는 들어보기는 했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저는 한국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곳이라고 듣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위험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인 문제와 경제적인 문제가 맞닿으면 일어날 수 있는 제약들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의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상황을 잘 알지 못하지만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분들은 응원하고 공감합니다.

한 가지 샤를리 앱도가 권력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끝까지 웃음으로 응대하는 것입니다. 설사 누군가에게 쇼크가 가더라도 권력의 남용에 맞서는 방법입니다.

염기남 기자 : 직업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만 어떤 사회적인 문제를 글로 알리는 것과 만화로, 이미지로 알리는 것에 표현상의 차이가 있을까요. 그리고 만화의 장점, 만평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로랑 멜리키앙 : 만평의 장점이라는 것은 수고를 들여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유머도 특정 문화에서만 통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만평은 문화적인 기반에 대한 이해 없이 추가설명 없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장점이 되기도 하고 샤를리 앱도 테러와 같은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염기남 기자 : 마지막으로 부천은 만화도시로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만화축제가 세계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점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로랑 멜리키앙 : 마술적인 방법은 모릅니다.(웃음) 먼저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어야 합니다. 국제적으로 열린 시각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만화축제 자체에서 어떤 포부가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직 만화축제를 관람중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느낌으로는 대중들이 많이 찾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참여한 것만으로도 국제적으로 열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과 가족이라는 전시를 보니 단지 해방 70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고 봅니다. 이를 본다면 의미있는 만화축제만의 포부도 읽혀졌습니다. 부천국제만화축제가 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화축제로 발전할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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