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목사 칼럼]

[부천신문] 지난 여름 방학에 할아버지 댁으로 할아버지를 뵈러 왔다. 반갑게 맞이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자를 데리고 나가 시원한 팥빙수와 돈가스를 사 먹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내 사랑하는 손자야, 너 오늘 맛있는 거 많이 먹었지? 그러니까 네가 커서 돈 많이 벌어서 할아버지, 할머니 맛있는 거 많이 사줄 거지?” “그럼요”하면서도 고개를 숙이더니 예기치 못한 말을 내뱉는다. “할머니, 그런데 나 고민이 하나 있어요.” “뭔데?” “내가 커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이 될지 모르겠어요. 취업이 안 된다고 생각될 때는 공부도 하기 싫어요.” 이 말을 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귀를 의심하였다.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그러나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초등학생까지 미래 불확실성에 고민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었다.

할아버지 세대는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기회의 시대였다. 사범대학을 나오면 선생님이 되고, 의과대학을 나오면 의사가 되고, 병원만 차리면 졸부가 되고, 시골고등학교에서 웬만큼 공부를 했으면 그 당시 5급 공무원 시험은 거뜬히 합격하여 60대가 넘으면 면장까지는 하고 퇴직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지금은 외국의 유명한 대학에 유학을 하고, 석, 박사 학위를 취득해 돌아와도 자기 마음에 흡족한 직장에 취업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훌륭하고, 지성 있는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있다. 한 젊은이를 위해 교육에 투자한 금액이 얼마인가? 교육받기 위해서 소모한 삶의 시간은 얼마인가? 젊은이들이 오포시대, 칠포시대를 넘어 N포세대를 살아야하니 미래불확실성을 넘어 절망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국가란, 절대절명의 존재다. 그 국가를 맡아 일하는 사람들을 공복이라고 부른다. 공복이 자기 자신을 위한 의식에 갇혀 버리면, 국가 전체의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이 감겨버리고, 세계 속의 한국, 그리고 국민의 삶의 질을 디자인하는 기능이 발휘될 수가 없다.

적어도 국가를 섬기는 사람은 국민의 일자리를 항상 준비하는 정책과 그리고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일자리 대비 노동자가 아니다. 노동자 대비 일자리를 만들어갈 책임이 정부에게 있는 것이다. 공무원은 국민이 세금을 모아 생계를 유지하도록 주는 월급을 받고 싶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을 경영하는데 불편을 덜어주고 마음껏 세계로 뻗어가게 할 수 있도록 제도와 법을 개선하여 경쟁력이 있는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공무원이다. 이 공무원을 감시 감독하고, 국민의 대표자로서의 국회는 항상 독수리처럼 매서운 눈으로 살펴야 한다.

국민과 국가 사이에서 국민의 편에서 역할과 국가 건강상태를 살피는 책임을 지고, 일해가야 한다. 그런데 이 땅에 태어나는 젊은이들이 초등학생부터 절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로 추락하고 있는 책임은 누가 져야할까? 오늘의 현실을 적어도 40년 전부터 예측하고 준비했어야 했다.

국가란 이미 오천만이 넘는 식구를 섬기는 봉사체이다. 미래예측을 정확하게 하고, 적어도 한 세기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과 방안을 연구하여 기본부터 다져 나아가야 한다. 완전한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는가? 다만 최선을 다하였는가? 라고 묻고 싶다. 책임을 져야 할 자는 책임을 지는 지도자가 누구인가? 전 국민을 위한 공무였느냐 하는 것을 물을 수밖에 없다.

이런 때가 올 수밖에 없음을 예측하지 못한 체 여기까지 왔다. 급박한 현실에 당황한 나머지 땜질식 처방이 난무하고 있다. 가장 급한 사안은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초등학생들의 의식까지 절망이라는 병이 전염되고 있는 이 무섭고 절박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것이 가장 시급하다.

창조경제란 용어를 들을 때, 이해가 난해하였다. 창조는 사람이 할 수 없는 행위이다. 신(神)만이 창조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뒤에 경제가 붙어 있다. 경제는 철저한 현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창조와 합성된 창조경제는 맞지 않는 말이다. 아예 불가능한 이름표를 달았다.

임금 피크제를 통하여 대기업의 신입사원 정원 늘리기, 창업의 적극적인 권장, 안간힘을 다 쏟은 최선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그러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는 정신적인 활력소를 불어넣을 대책은 없는지, 이것이 급선무이다. 정신이 병들면  삶이 허물어진다. 지금 급히 응급조치를 해야 할 부분은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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