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백석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부의장

[부천신문] 정부와 여당이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를 국정교과서 과목으로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하는 행정예고를 고시하였다. 교육부는 앞으로 20일간의 행정예고기간을 거쳐 11월 2일까지 국정화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한 뒤 고시를 확정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로서 많은 국민들의 국정화 반대의견과는 상관없이 고시가 확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교육부는 새로 만들어질 역사교과서를 ‘올바른 역사교과서’라고 이름을 붙였다. 만약 고시가 확정되면 2017년부터 우리나라의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이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배우게 된다.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가 “정권이 10번 바뀌어도 바꿀 수 없는 교과서”를 강조한 것으로 보아 ‘올바른 역사교과서’란 그 내용이 시종일관 가치중립적이어서 한국사회의 보수와 진보세력 양쪽이 모두 만족하는 역사교과서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생각에는 아마도 그러한 수학교과서는 있을 수 있지만 그러한 역사교과서는 만들기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사회현상에 대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애시 당초 가치중립적일 수가 없다는 것에 대체적인 결론이 내려져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지성인 독일철학자 하버마스(Habermas)는 가치중립적인 ‘객관주의의 환상’을 거부하였다. 자연과학에서 연구자는 관찰의 대상인 자연현상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이탈된 관찰자’인 반면 사회과학에서 연구자는 연구대상과 상호작용하는 ‘성찰적 동료’라고 갈파한바 있다.

사회현상에 대한 연구는 사회세계에 대한 이해이다. 그런데 가치중립적으로 이해하겠다는 사회과학자의 의지가 발휘되기 이전에 사회는 그 자신도 모르게 이미 해석된다. 사회과학자는 처음부터 그가 연구하려는 사회세계의 일부일 수밖에 없으며 그가 속한 사회세계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 연구자가 사회를 해석하는 과정에 본원적으로, 지속적으로, 그리고 가치비중립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 역시 정치현안이라든가 한국 근현대사를 보는 것에 있어 가치중립적이지 못할 것이다. 나는 학계에서 일할 때 사회과학도로서 의지적으로 객관적 시각을 표방해오기는 했지만 아마도 최종분석에서 볼 때 객관적이지 못했으리라.

사회과학자는 처음부터 그가 연구하려는 사회세계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고 하였는데 나는 태생적으로 호남인으로서, 계층적으로 서민의 가족배경을 가진 사람으로서 아마도 진보적으로 경도되었을 것이다.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내가 한국사회를 해석하는 과정에 본원적으로, 지속적으로, 그리고 가치비중립적으로 관여해 왔을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자본주의 정치경제를 객관적으로 공부한 이후에 현 소속의 새정치민주연합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아마도 나를 둘러싼 세계가 나의 정당선택을 이미 결정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묻고 싶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려는 국정화 시도의 배경에는 혹시나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를 둘러싼 그들이 주변세계가 알게 모르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아버지가 독재자였다는 역사적 평가와 친일파자손이라는 오명의 딱지가 그들이 한국사 교과서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들고 이결과 정치적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국정화를 강하게 추진하게 만드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 더하기 3은 5이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라는 수학과 과학에서의 명제에는 보수나 진보가 모두 인정할 수 있는 가치중립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일관계, 한국전쟁, 군사정변, 산업화, 민주화운동 등에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은 선진문명의 국가에서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호주, 뉴질랜드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의 역사교과서 발행체제는 검정과 인정 그리고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란 국가권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세력이 내놓는 역사 해석이다. 국정화를 통해 집권세력이 만드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란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는 역사교과서일 뿐이다. 이 국정교과서는 만약 정권이 바뀌면 또다시 바뀌는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시행착오를 겪고 보수와 진보의 소모적 국론분열을 더 이상 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의 검인정교과서를 유지해야 할 것이며 문제가 있다고 평가되면 검정과정에서 수정하고 보완하면 될 것이다.

국정교과서가 아니면서 우리 모두에게 맞는 올바른 교과서는 어떤 교과서일까? 그 교과서란 역사에 대한 근거 있는 다양한 해석을 포용하면서도 토대적으로 대한민국의 주권을 인정하고 대한민국의 주권을 위협하는 어떠한 종류의 시도에도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는 교과서일 것이다.

현교과서가 대한민국의 근본을 부정하는 내용으로 가득 찼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으며 만약 진정 그러한 책이 있다면 개별적 사안으로 조치할 문제이며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획일적 조치로 대응해서는 안될 것이다.

세계 최고의 교육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역사교과서의 국정화가 완료된다면 이것은 우리의 크나큰 수치가 되고 스스로 한국사회가 문명사회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증거를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송백석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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