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칼럼]

[부천신문]눈 오는 밤 손자가 칭얼댄다. 할머니는 팔을 펴서 칭얼대는 손자를 끌어안아 베개까지 만들어 주신다. 그리고 옛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할머니의 어릴 적 이야기다. 어느 날 뒷집에서 횃불 같은 것이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손살 같이 달려가더니 앞산 절벽 산마루에 꽂혔단다.

아침밥을 먹이면서 그 이야기를 아버지께 했더니 “윗집 영감 곧 돌아가시겠네.”하셨단다. 할머니의 말은 이어졌다. "그런데 그날부터 삼일이 지난 저녁에 윗집 할아버지는 정말로 돌아가셨어. 신기한 것은 윗집 할아버지가 뭍이신 무덤이 바로 내가 본 횃불이 머물던 그 자리 아니겠어. 그곳이 유명한 지관(묘자리를 봐주는 사람)이 정한 자리였대. 참 신기하지!”라고 말하셨다.

이렇게 어리고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들어왔던 초월의 세계, 신에 대한 존재가 무의식적으로 한국인의 신에 대한 지식을 형성하게 되는 것 같다. 이미 유년 시절 혼불이 나간 사건을 이야기로 접했다면, 장성하여 이를 목격했을 때, 그것을 그대로 믿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이내 죽은 사람은 혼령이 된다는 팩트(Fact)가 성립된다.

농경사회에서부터 지금의 정보사회까지 이어온 제사는 시대를 막론하고 긍정된다. 한국인의 신학(神學)에 있어 실제 생활의 깊숙이 뿌리박힌 신에 대한 관념은 돌아가신 혼령이 이 세대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죽은 조상이 혼령 되어 그 가문의 운명을 좌지우지 한다고 여전히 믿고 있으며, 심지어 일본 같은 경우는 국가를 위해서 전쟁에서 희생된 전사들이 죽어서 혼령이 되어 국가를 수호하는 수호신이 되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이 뜨거운 이슈가 되는 야스쿠니 신사의 모형이다. 현 아베 총리도 이 믿음 때문에 신사에 공물을 보내기도 하고, 각료들이 참배(제사)를 드리고 있다. 이처럼 조상이 가운(家運)을 결정한다는 믿음 때문에 제사는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여기에다 유교의 ‘효’의 도는 인간이 지켜야 할 근본 도리로 가르쳐왔고 지켜지고 있다.

효행 중에 살아계신 분께 해야 할 도리의 연장선상으로 사후의 조상에게도 마땅히 해야 할 도리가 바로 제사이다. 효행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샤머니즘이 도입되어 제사가 유교적 규범과 절차로 체계화되고 문화가 되었고 샤머니즘과 혼합된 종교가 되었다. 이 제례와 아울러 영원히 조상을 모셔야 묘자리를 명당(묘지)으로 마련하는 것이 효행이 되었고, 이로 인해 후손 역시 복을 받는다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신에 대한 오해와 변질은 진정한 효의 사상을 오염시켰고, 조상을 빙자하여 자기 자신의 부귀영화와 출세와 욕망을 성취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국가 지도자들까지도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조상의 묘를 이장하는 사례까지 만들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신에 대한 이해이다.

샤먼은 몽고어로 ‘정신’을 의미한다. 샤먼은 영매(신과 인간 사이에 위치한 중보자)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은 이러한 사람을 신령하다고 믿는다. ‘신이 내린 사람’(무속에서 내림굿을 통하여 신을 모신 사람)들은 보통사람과 다른 초능력의 사람으로 믿어 왔다. 그리하여 자신의 미래가 불확실하거나 불안할 때 점도 치고, 액(나쁜 일을 조장하는 원인자)이나 불행한 일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부적을 받아서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집 문설주나 출입구, 혹은 대들보에 붙여서 액운을 막기 위해 부착해 놓기도 한다.

인간의 일생을 운명이라고 잘못 인식하고 운명을 주관하는 것은 초자연적 존재 즉 귀신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생사화복이 자기 인격의 선택이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 결정한다고 믿고 있기에 귀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잘 맺어가느냐가 자기 인생의 생사화복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귀신의 이해에 매료되어 있다.

최첨단의 정보시대에 살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이 힘들어지고, 어려워져서 도저히 자기 힘으로 헤쳐나기 어려울 때, 인간은 초자연적 능력에 의탁하기 마련이다. 결국 미신을 섬기게 된다. 이러한 초월자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은 자연까지 숭배하는 정령 신앙자가 되어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신이 있다고 믿고 숭배하기에 이른다. 바로 비인간화 되는 것이다. 사람을 인격적 존재로 보지 않고, 초자연적 능력자로 여기거나 모든 존재를 신성이 있다며 섬기는 이 믿음은 결국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의존하는 것에 종속되어 버리게 된다.

바른 신에 대한 이해는 인격적이어야 하고, 지고한 도덕적 바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적 신에 대한 이해는 현세의 풍요와 쾌락, 그리고 권력을 숭상하는 자기 욕망의 노예가 된 다음 그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욕망의 투사로 자연물을 신으로 섬기기도 하고, 신령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을 섬기고, 맹목적 복종을 강요받고 이에 따르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심지어 귀신이야기는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누구나 하나쯤은 알고 있는 이것이 우리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결국 한국인의 신에 대한 이해는 자신이 자신을 위하는 철저한 이기심에 비롯된 욕망이다. 인격적으로 자기 삶을 성실히 살면서 스스로 존귀하게 여기지 않고 초월자를 통한 요행으로 성취하려는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는 죽은 자다. 죽은 자는 결코 살아있는 자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다. 다만 산 자가 산 자에게 영향을 끼칠 뿐이다. 나의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하며, 건강한 신에 대한 이해와 기준, 신앙심으로 책임 있는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잘못된 신학(神學)이 오늘의 한국 사회를 혼돈에 빠지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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