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칼럼]

[부천신문]어느 날 아침 검은 안경을 낀 준장이 군인이라면 당연히 소지해야 할 권총도 없는 빈 총지갑을 차고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에도 국민은 침묵하였다. ‘잘 살아 보자’라며 요란하게 떠들어대던 새마을 운동이 전국을 뒤흔들었을 때도 그저 침묵하고 따랐다.

그저 잘살게 해준다는 공약에 박수 치고, 춤도 추었다. 죽기 살기로 이 길밖에 없다고 외쳤다. 그래서였을까?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옮겨가는데 20년이 체 걸리지 않았다.

정권을 잡은 절차가 잘못 되었으며 국헌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음지로 끌려가 수염들이 뽑혔다.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그렇게 죽어간 생명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 때도 국민들의 대다수는 침묵했다.

오히려 가족과 나라는 살려보겠다는 생각으로 원양어업, 독일 광부와 간호사로 세계적인 극한 직업에 뛰어들었다. 중동의 사막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고 그 희생의 댓가인 핏물을 받아 나라의 부강에 이바지했다.

박정희 정권은 독재자 도오조 히데끼의 방법대로 경제세계대전을 치르기 위해 수출전신의 승리를 위해 국가 주도적 대기업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종합상사의 탄생이고, 오늘날의 대기업 그룹들의 전신이다. 지금 가족 대대로 오너 일가로 승계되는 부의 기업은 사실 국민의 기업이다. 하지만 이 때도 국민들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국민의 세금으로 기업을 세웠는데도 국민은 침묵한 것이다.

철저한 정치공학적인 계산에 의해 60이 훌쩍 넘은 할머니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울 때도 당선시켜 주었다. 지갑도, 핸드폰도 없는 사회생활의 기본도 모르시는 할머니가 푸른 기와집 안방에 앉아 자기 귀에 좋은 말들로 위로 받고 칭찬과 아부하는 사람들로 둘러쌓여 있을 때도 여전히 침묵했다. 그저 푸른 와가를 드나들었다는 냄새만 풍겨도 ‘실세’로 눈치 채고 재빨리 굽신대고 아첨하며 순종하기 바빴다.

우리 사회의 가장 엘리트라는 집안의 사람들과 재벌들이 더욱 그랬다. 출세나 이권을 챙기는 능력이 빼어난 천재들은 야합했고, 권력을 이용하여 부귀영화와 사적 욕심을 채우던 사람들의 욕심이 재주부림, 과유불급의 상태가 되었다. 보수라고 자칭하던 언론은 더 강한 힘을 갖고 싶었다.

푸른 와가보다 광화문 함성이 더 큰 힘이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하나가 된 언론은 더 이상 제4의 권력의 자리에 안주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제1의 권력이 되기 위해 기꺼이 하나가 되었고 힘을 모았다. SNS에 탈북자 C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글 하나를 올렸다. 북한에 김일성 광장에 아무리 인민을 동원하여도 십오만명을 넘기지 못하는데 그것보다 작은 장소의 광화문에 어찌 백만 가까운 인파가 모였다고 보도할 수 있느냐고 비난하는 것이다.

촛불의 숫자가 아니라 붓끝으로 지어낸 숫자가 그저 백만 아니 이백만일 뿐이다. 강남 스타일의 스타가 콘서트할 때보다 더 모였는가? 빤히 아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대로 지껄이는 그 소리에 국민들은 침묵하고 있다. 아직 범죄 사실이 드러나지도 아니하였는데 무슨 하야이며, 탄핵인가? 국정을 마비시킨 진짜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허위 기사나 방송을 통하여 국민을 선동 시킨 거짓 보도의 언론들이다. 광화문 어느 찻집의 풍경이 이 가을의 명화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들의 선동이 성공했다고 보도한 후 회심의 미소를 띠며 야릇한 성취감을 맛볼 것이다.

그래도 국민들은 아침이면 여전히 헐떡거리며 출근을 하고, 저녁이면 처진 어깨로 퇴근을 하고, TV나 신문을 펼쳐들고 소주잔을 기우리고 흥분을 하다가 잠이 들 것이다. 참 순진하다. 매번 당하고 이 혼탁함에 선동 당해도 어찌 하나 항의하는 국민이 없다. 여전히 수능시험 결과에 발을 동동 구르고, 기말시험에 한 점이라도 더 받으려고 온 가족이 애를 쓴다.

정치학에서 말하는 전체 인구의 3.5%가 시위하면 정권이 바뀐다는 정치계산법을 우상처럼 믿으며, 어찌 되었든지 5천 700만의 3.5%를 만들어 내기 위해 개인 프라이버시까지 들추어내어 국민들을 현혹시키느라 골몰하고 있는 현 시국에도 말이다.

흥분 제작소 직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은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일만 한다. 아파트 대출이자가 걱정되고, 다가올 전세 값 인상에 더 큰 관심이 많고, 갚아야 할 카드 값에 신경을 쓸 뿐이다. 착하다. 정말 격이 높은 국민이다. 아무리 흥분제를 먹어도 끄덕도 하지 않는다. 군사 독재 반대 운동권의 가수가 노래를 한다. 지금의 상황과 그 날은 전혀 다른 상황인데도 말이다.

뉴스에 얼굴을 내밀고, TV에 연줄을 대려는 연예인들도 촛불을 들고 꼼수를 부린다. 안된다. 대한민국 국민은 겪이 높다. 농촌에는 마늘 심고, 가을걷이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트랙터를 몰고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은 이미 선동에 마취가 되어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재벌이 능수능란하게 부정적 방법으로 돈을 끌어 모으고, 정치인들은 4년 임기의 취직을 위해 별의별 쇼를 해도 상관하지 않겠다. 자기들이 무슨 당, 무슨 당 해도 대다수의 국민은 애국당이다. 민격(民格)이 바로 국격(國格)이다. 민격(民格)이 진정 하늘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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