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동 전 부천시의원

“물론 나는 알고 있다 /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로 시작하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집은 80년 대 운동권 출신 시인 최영미 작가의 첫 시집이다.

당시 폭력적 정치 현실에 반항하면서 투쟁의 시대를 관통해 온 1980년 대 대학생들의 삶이, 30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일상으로 돌아오며 스스로 굴절되는 모습을 서정적이고도 도발적인 시어로 가득 담아냈던 이 시집은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곧바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이상주의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외로운 싸움에서 어느 덧 삶의 한복판으로 내몰린 세대의 정체성 혼란을 그는 담담하게 그려내며 결국 사랑이라는 결어를 군데군데 묻어 둔다.

지난 석 달 동안 그야말로 이 나라는 잔칫날의 연속이었다. 한 쪽은 촛불을 밝히고 한 쪽은 태극기를 흔들며 그들만의 잔치에 몰입해 있었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혼란 사태가 벌어지면서 진실의 중요성을 알고 싶기 보다는 분노의 파도에 올라타기가 더 바빴다.

‘사실관계라도 알아보고 가자’하면 역적 놈이 될 분위기로 몰아가는 정치권과 언론은 앞장서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에 불을 지르고 대한민국 전가의 보도傳家寶刀인 ‘촛불’로 광장을 물들여 나갔다.

망망대해에서 횡재하듯 ‘촛불’이라는 범선을 만난 정치세력은 ‘이게 웬 떡이냐?’싶게 선봉에 올라타고 깃대를 흔들었다. 정치적 적대관계에 있던 세력들까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 몸이 되어 일전 불사의 전의를 불태웠다.

워낙 큰 충격이라 멀뚱히 지켜보고 있는데, 어어 하는 사이에 자칫하면 앞마당 감나무까지 빼앗길 처지에 놓이자 태극기가 일어섰다. “이 놈들아 어떻게 만든 이 나라인데?”하면서 배고팠던 시절 밥 굶어가며 조국 근대화에 앞장서 이룩한 공로를 통째로 부정당하는 치욕을 참지 못해 이쪽도 분노의 이를 갈았다.

도덕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최순실 일당의 파렴치한 국정농단 사건의 공은 ‘범죄자 처벌’이 아니라 ‘국론 분열’이라는 골대로 글러가더니 마침내 골인하고 말았다 나라는 정확히 둘로 갈라졌다.

3월 10일, 헌재의 결정이 내려지고 여기저기 너나 할 것 없이 이제는 통합을 외치고 있다. 국론을 하나로 모아 앞으로 나아가자고 한다. 당연한 말이요. 그것이 나라가 살 길이다.

그러나 앞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미 한 쪽은 불복을 선언한 상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되짚어 보면 우리 국민들은 너무도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에 답이 있다.

나 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은 그냥 싫다. 저들도 5천만 국민 중의 하나이고 어쩔 수 없이 이 땅에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임에도 그냥 싫다. 이 정도면 아예 ‘국론분열’이 아니라 ‘국가분리’수준이다. 이 판국에 어떻게 통합이 되겠는가?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의무도 정치권에 있다. 아예 저 쪽은 버리고 내 편만 똘똘 뭉쳐 가겠다는 선거 제일주의식 사고방식으로는 어느 것도 해결할 수 없다.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가 그렇게도 낮은 이유는 전체가 아닌 내 편, 내 쪽 사람들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나머지 반쪽을 인정하고 아우르기 전에 통합을 이야기하는 것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최영미 시인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혁명이 진부해졌다 / 사랑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랑이 진부해졌다”고 한탄하듯, 잔치가 끝난 이 마당에 이제는 국민들이 정치권에 대한 환멸로 속 터지는 날만은 제발 없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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