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대 영 목사

[부천신문] 2018년이 시작되었다. 경관이 좋은 기가 막힌 해변 호텔을 빌려서 폭력배 전 조직이 신년회를 열었다. 올해도 회장님에게 충성을 다하고, 형제간에 질서를 지키고, 의리를 지키며, 계획한 목표 달성을 위해 피를 바치라고 다짐을 했다.

이 사람들의 이마에 비친 2018년 1월 1일의 햇살은 어제 2017년 12월 31일 황혼녘에 비친 햇살과 다를 바 없다. 폭력으로 자기 조직 경쟁력을 높이고, 더 많은 향락을 누리라고 다짐하는 폭력조직 회장의 신년사는 지난해 신년사와 다를 바가 없다. 이 사람들은 새해를 맞지 않았다. 지난해 어제 하던 일을 반복하는 기회로서의 2018년이 열렸을 뿐이다.

우리나라가 서력(西曆)이라고 해서 단기와 서력을 함께 쓰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대다수가 단기는 잊고 서력을 쓰고 있다. 서력은 그 뜻이 따로 있다. 한글로 말하면 주후(主後)이다. 주후(A.D. Anno Domini – in the year of our Lord)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후라는 뜻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 오심은 새로운 창조 질서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주 예수가 온 우주와 인류의 왕이자, 통치자이자, 주이시다라는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므로 서기 서력은 예수가 이 땅에 오셔서 자기의 나라를 세우고, 왕으로 오셔서 통치가 시작된 새 시대, 새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서기 2018년은 예수를 자기 왕으로 모시지 아니하는 사람이 예수를 자기 왕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되어야 새해를 맞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거듭난 사람이라고 하고, 나날이나날이 예수를 닮아가는 성화(聖花) 되어져 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새사람이므로, 새사람이 맞는 새해이다.

새해는 아무나 맞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란, 물리적으로 자연히 우주의 질서와 조화된 운동으로 순환되는 것을 계수한 것 뿐이다라고 과학적으로는 말한다. 그것은 과학적 가설이다. 갈릴레이가 지구는 돈다고 했던 가설은 인정받지 못한 때가 있었다. 갈릴레오는 거짓된 가설로 군중을 현혹한다 해서 처형을 당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갈레리오의 가설을 정설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그 당시 종교 암흑시대 재판은 잘못되었다고 모두 알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에 이 우주나 지구촌에 어떤 변화가 있어서 새로운 종의 인류가 지구촌에 생겨난다면 현재의 정설이 틀린 이론이 될는지 모른다. 과학적 가설은 현상주의이다. 법치에는 증거주의이듯이 그러나 종교의 정신세계는 믿음주의이다. 그가 믿는 것이 가설이 아니라 절대 진리이다.

수십억이 믿는 종교인들의 진리를 들어보라. ‘부활’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산다는 것을 진리로 믿고 있다. 그것은 절대 진리이다. 과학적으로 사람은 죽으면 다시 살지 못한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종교인들은 과학적으로 살지만 정신세계에서는 부활을 확신한다. 그리하여 신앙의 전통은 부활을 믿기에 자신의 신앙양심을 지키고 순교한 숫자가 부지기수이다.

이 전통과 역사를 지금도 따르는 숫자가 헤일 수 없이 많다. 정말 이런 사람들은 시간의 주인은 자기들이 믿는 신앙으로 이해한다. 기독교인은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실 것이다. 불교도들은 석가모니일 것이다. 회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학적으로 입증하라고 하면 도리어 ‘당신도 내가 믿는 것을 믿으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을 과학으로 아는 사람들보다 독실한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양심, 인격적 삶이 훨씬 옳고, 바르고, 행복하고, 자유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이유가 있다. 과학은 뇌에서 시작된다. 신앙은 초월에서 시작되어 계시가 주어지고 계시를 믿음으로 영감을 같게 되며, 영성(靈性)이 생겨나고, 절대계시를 실천하기 위해 자기 생존까지 희생한다. 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는 보도국에서 주는 원고대로 읽는다.

자기의 사상, 자기의 주장, 자기의 뜻과 입으로 말하는 것과는 일치하지 않아도 보도한다. 배우도 대본대로 외워서 말하고, 연극이나 연기를 할 때, 자기의 인격과 연기하는 시나리오 상의 인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과학적인 사고를 하고, 과학적으로 사는 사람은 과학의 연구대로 배워서 그대로 실천한다. 과학의 가설대로 행동한다.

그러나 초월의 세계의 계시를 수용하고, 그 계시를 믿는 사람은 초월의 주체이신 초월자의 계시를 받아드리는 자 안에 임재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생각하고, 자신이 말하고 자신이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자의 뜻에 의해 수동적으로 살아간다. 몽골리안들이 믿던 샤머니즘의 영매와 다른 것은 절대 인격적이라는 사실이다.

이 땅에 온전한 인격이 예수의 인격일 것이다. 예수의 인격으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이 말을 제자가 예수께 물었다.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가 대답했다. ‘너의 마음속에 있다.’라고 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 사람에게만 2018년이 있다.

2018년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온 시작부터 시간 계수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새 사람으로 변하지 않는 자에게는 새해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서기 2018년이라고 한다. 기원이 달라지기 시작한 때부터 계수한 계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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