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대 영 목사

[부천신문] 시민사회가 시작된 것은 그리스의 아테네 그리고 아고라라고 논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여성은 제외되었지만 자기의 의사를 마음껏 발표할 수 있고, 개인의 주관적 선택으로 공동체의 대표를 세우고, 사회 방향성과 정책을 결정하는 지극히 원시적이지만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였다.

그러나 약점도 있었다.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다. 자연히 집단적 일체감을 훈련한 폴리스(도시국가)와의 전쟁에서 약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집단을 위해 개인의 인격과 자유, 창의와 의사가 무시된다면 아무리 강하고, 부하며, 큰 집단의 소속되어 있다 하더라도 불행할 수밖에 없다.

삶의 질을 행복이라고 가설한다면 이러한 시민사회가 이루어져야 행복한 시민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유신정권시절(1980-90년대)에는 군 독재의 거부운동이 시민의 뜻이었다.

그러나 당근이 있었다. 경제발전이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절대빈곤  상황에서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을 얻지 못하던 국민들에게 이것만은 해결해준다고 했을 때, 국민들은 기다렸다. 그런데 과연 농경사회를 탈피하고, 산업사회로 옮겨가는 짧은 기간에 기적 같은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인간에게 생존문제는 절대적인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군사 독재에 맞서는 세력은 반사회적인 인사로 보는 국민도 많았다. 그리하여 유신정권이 버텨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절대빈곤문제가 해결되면 심리적 만족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이것을 생존의 삶에서 정신가치를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이로 말미암아 소득이 오르면서 삶의 질을 높여 달라는 요구가 점점 팽창하기 시작했고, 집단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자유와 창의, 그리고 주관적 정신세계를 향유하고 싶은 욕망이 점점 커져가게 되자 이를 위해 앞장선 의식 있는 민중은 자발적인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표현하고, 압력을 행사하고, 시민의 삶의 질이 개선됨을 도출하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을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자신보다 모두의 뜻을 존중하는 사람들이었다.(특별한 의식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소위 NGO가 생겨난 것이다. 남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치인과 관료에게 압력을 행사하다보면 많은 헌신과 희생이 컸다. 그래도 이를 감내하면서 수난의 봉사는 계속되었다.

더욱이 선진복지국가나 민주국가의 사례연구와 본받아야 할 좋은 사회성들을 도입하고, 연구 발전시키고 적용시키기 위한 지성인들도 많았다.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의 생활비가 전혀 공급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의 기부에 의존하던지 아니면 가족의 노동과 자신의 이중적 직업을 가지면서 절대빈곤만 면하면서 이 어려운 십자가 길을 걸었다.

누구 한 사람 존경도, 명예도, 칭찬하는 사람들이 없지만 오직 한 길, 한국호라는 거대한 배가 바른 항해를 할 수 있도록 늘 캄캄한 밤 같은 세대에 빛을 발하는 등대역할을 해왔다. 사회는 퇴보하는 사회도 있지만 선진 발전하는 사회도 많다.

그러나 한국호는 삶의 질을 높이는 향상된 행복의 항구를 향해 발전하고 있었다. 이러다보니 시민운동을 하는 NGO의 수고가 많은 기여를 하였음을 시민들이 알았다. 그러다보니 관료의 선택 대상이 되어서 관료로 입성한 NGO 많아지기 시작했다.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특성이 있다. 먼저 비판적이어야 한다.

어떤 사안이든지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하여 비판하고, 비판한 다음의 긍정을 발견하는 마치 긍정을 발굴하는 광부와 같은 특성이 있다. 그리고 자신 발견한 문제점은 항상 자기만 가지지 아니하고, 공유하며, 이 정보를 공지하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타협하지 않는다. 타협이 없으니 타협에 의한 대가가 없다.

그로 인하여 삶의 환경이 열악해지고, 이 열악함에서 자신의 양심 소리를 스스로 듣고 살았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관료가 되면 타협의 명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있으며 시민이 알 것은 알게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르게 하고 문제를 해결한 다음 알려줘야 한다. 또한 관료나 정치인은 바르던 바르지 않던 시민의 지지가 중요하다. 결국 선의의 표퓰리즘에 연계되지 않고는 계속 자리를 지킬 수 없다.

등대지기가 깊은 밤이라고 해서 안가(安家)로 들어가 버린다? 등대지기(NGO)가 등대를 버리면 항해하는 배는 좌초, 충돌, 그리고 해상사고는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시민단체 기사들이 칼을 놓고, 갑옷을 벗어버리고, 관료로, 정치인으로 옷을 갈아입고 권력을 잡은 자가 많아진다.

등대는 불이 꺼지고, 한술 더 떠서 소득에 군침을 삼키며 집단 이익까지 도모하니 빛은 사라지고 어두움의 기사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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