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대 영 목사

[부천신문] 어느 날 예수 앞에 많은 군중이 몰려왔다. 험상궂은 한 사람이 한 여인의 목덜미를 잡고 예수 앞에 넘어뜨렸다.

성난 군중은 ‘이 여인을 간음하는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잡아왔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죄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돌로 쳐 죽일 계획입니다. 당신 예수는 우리가 율법을 지키고, 정의로운 이 일을 용인하시겠지요?’라고 외치며 손에 손에 돌을 들고 치려고 했다.

그 때, 예수 자신도 할 말이 없었는지 얼마간 침묵을 했다. 그리고 바닥에 글을 썼다. ‘죄 없는 자는 돌로 치라.’ 그 글귀를 보고 돌을 들었던 사람들은 팔에 힘이 빠지고, 돌들을 놓고 한 둘씩 떠나가 버렸다.

율법대로라면 당연히 돌로 쳐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처형을 함으로써 다음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생각은 달랐다. 법이 없어서 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인간은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을 이기고 죄 짓지 않는 온전한 의인은 없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이 땅에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다. 죄인을 위하여 자기 자신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고 희생함으로 죄인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이 이야기는 특정 종교의 경전이라고 치자 오늘의 시대정신(時代精神)은 무엇인가? 인간존중시대이다. 범죄한 자라도 법적 판결이 나기 전 피의자는 무죄로 인정하고,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다. 설사 살인의 징후가 있고, 감정적으로는 살인자가 틀림없다 하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범죄자도 처벌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인간존엄의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범죄 사실에 대한 고소도, 조사도, 판결도 없는데도 당연히 특정대상자를 놓고 주관적 고백을 한다고 해서 이미 언론은 대문짝처럼 보도하고, 정보로 단죄하기 시작한다. 이 어찌 법치국가로 볼 수 있을까?

먼저 인격을 살인하여 땅속에 언론이 매장시켜놓고, 진실이 밝혀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흐른다. 억울하게 당한 사람의 인격의 회복이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의식 안에는 보도된 사건만 기억될 뿐 보도 피해자가 무죄가 되었다 하더라도 자기의식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고백하는 자의 아픔은 뼈저렸을 것이다. 오죽하면 자기의 명예를 걸고 고백을 했겠는가? 그러나 부정적인 유추는 금물이지만 지금까지 성범죄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범죄였다. 고대국가는 정치적 이용으로 사랑도 없는 국가 원수간의 혼인은 이미 자타가 아는 상식이다.

지혜의 상징인 솔로몬까지 이러한 혼인을 한 사실을 볼 수가 있다. 정의의 사람 다윗 역시 성범죄를 하여 솔로몬을 낳았다는 것도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르네상스 혁명을 낳은 서구종교개혁(교회개혁)은 종교암흑시대라고 일컬어지는 기독교의 성직자들의 부패였을 것이다.

근래에도 미국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성직자 부적절한 성적 범죄로 고소당하여 배상할 재력이 없어 예배당 매매하여 갚아준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금욕과 의인의 생활을 강조하는 기독교가 성직자 자신들이 범죄하는 모습을 본 신도들이나 뜻있는 성직자들이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결국은 봇물처럼 터져 나와 종교개혁이 이루어졌고, 그 후로 르네상스의 시대가 시작하였다.

르네상스의 그 시작 역시 인간중심의 시대정신에 기인하여 인간의 인격을 예술로 표현하는 시대가 열렸다.
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해 보자. 네덜란드 화가이다. 서양예술 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중 화가이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자살을 감행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그린 작품이다.

그는 1890년 7월 29일 사망했다. 후기 인상파에 속한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준엄한 기독교 교육을 받았다. 자기 아버지가 시무하는 교회가 농촌이므로 어린 시절 자연과 함께 자랐다. 그러나 그를 보다나은 인재로 키우기 위해 아버지가 고흐가 원치 않는 도시 학교 기숙사에 들여보낼 때 타고 온 노란색 자동차는 그에게 깊이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작품에는 노란색이 가미되어 있다. 그는 젊은 시절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예수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광부 촌에 들어가 목회를 했다. 얼마나 사랑이 깊었는지 며칠간 식사를 하지 못하고 배고픈 시간 빵 조각 하나를 먹으려고 하는 순간 생쥐 한 마리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빵을 생쥐에게 주었다.

이러한 선심의 목회자가 타인들에 의하여 목회를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는데 뛰어들었다. 좌절과 실패, 가난과 열정이 함께 엉키어 출입하지 말아야 할 창부의 집을 드나들었다. 정부를 두기도 하고, 모델로 쓰기도 했다. 암흑의 시간이 너무도 어둡고 길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전시하지 말자는 사람은 없다.

이 작가를 예술세계에서 퇴출하자는 사람도 없다. 다만 서로 회개와 용서, 그리고 피차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예술은 예술대로 살려가야 함이 어떨지 모르겠다. 그러나 돌을 든 의인들이 너무 많아 보인다. 자기의 죄는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부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