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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칼럼] 가면을 자기 얼굴로 아는 사람

부천신문 l승인2019.09.04l조회수 :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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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글 몇 줄 읽고, 말 몇 마디 하는 것을 듣고, 그 사람을 쉽게 믿는 경우를 본다. 사람은 일초에 반하고 한 달에 매료되고, 평생을 잊지 못하는 사이가 된다고 하지만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 당시에는 현혹이 되었든지, 좋아했든지 누구의 충언도 듣지 않고, 결혼하여 평생을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은 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

우리의 조상은 즉석에서 매료되어 조기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 후에야 비로소 서로가 서로의 진면목을 알고 후회하며 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혼 후의 아픔은 깊고 크다. 특히 자녀 있을 경우는 또 다른 아픔이 된다.

사람은 사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믿을 수는 없다. 사람 자신이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고, 가변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격이란, 지정의로 구성되어 있기에 변화무쌍한 것이다. 특히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은 신뢰하여 살기가 힘들다. 수시로 변하는 감정 때문인 것이다. 젊은 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사람을 믿는다.

SNS상에 올리는 필자 미상의 글도 쉽게 전파하면서 글과 같은 일이 사실인 줄로 믿고, 실제 그 이론이나 주장대로 따랐다가 실망, 배신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약 정신적인 차원이면 자기 자신의 삶의 진로가 바뀔 수도 있다. 사고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 특히 이데올로기에 관한 글이나 말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막시즘은 선전과 선동으로 군중을 움직이고 그 힘으로 혁명을 이루려고 한다. 그들의 말은 전혀 실현성이 없는 이상적 논리가 대부분이다. 이상이란,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고, 지성을 무디게 만든다. 처음 막시즘이 들어왔던 1930년대는 일본의 강점기였지만 지성인들에게 이데올로기의 영향은 강렬했다. 꿈도 없고, 미래가 막힌 상황에서 이상적은 글과 이론을 들으며 새 희망이 솟구쳤을 것이다. 그래서 젊은 지성인들의 막시즘에 빠진다.

많은 지성인들이 월북을 하거나 남한에서 남노당에 관계되어 활동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외치는 상습적인 단어가 있다. 공평과 정의, 그리고 토지의 공개념이다. 이 몇 마디만 하더라도 가난하여 소유가 없는 사람들, 그리고 불공평한 사회, 불의한 재판을 경험한 사람, 삶이 송두리째 강탈당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유혹된다. 특히 계급 없는 사회라도 말과 모든 토지를 국가의 소유로 하고, 공동 생산하여 그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자고 할 때 누가 따르지 아니하랴?

우리나라는 1980년에 와서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유럽식 사회주의와 북한식 막시즘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유럽식 사회주의는 그 바탕이 철저한 기독교적 윤리였음을 간과하는 것이고, 그 사회 구성원의 인격을 몰랐던 것이다. 북구만 하더라도 그 정신 바탕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극한의 땅에서 삶을 꾸려갔던 개혁 기독교인들이 일군 나라들이 많다. 덴마크만 하더라도 그룬트비히 목사가 국부였다. 그가 헌법과 사회제도, 복지제도, 모든 도시 건설의 기초는 높았다.

이에 반해 한국의 정신문화의 바탕은 샤머니즘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 정신문화와 다른 점이 많다. 특히 종북 막시즘은 맹목적이다. 유럽과 비교하면 잘 알 것이다. 소련이 지배하던 나라들은 모두 경제 파탄을 경험했다. 인류사의 대 비극인 2차 대전 이후에 막시즘은 지주계급과 왕족의 모든 땅을 몰수한다는 계념만 하더라도 신천지가 세워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참했다. 그러나 동유럽이 그 표본이다.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 사이비 종교 집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집단 강제노역장이라는 것을 탈북자를 보면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김씨 일가를 백두혈통이라고 믿고 따르는 것일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아니한다. 우리 중에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 혁명을 꿈꾸고 조직했던 한 지성인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아직은 의혹이나 언젠가는 사실 여부가 밝혀질 것이다. 그는 언변이 달인에 가깝고, 논리가 희화적이며, 항상 자기 주장하고자 한 논리만 주장한다. 그는 한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맹신하던 사람이다.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을 하려면 베트남의 호치민이나 쿠바의 체 게베라처럼 일생을 청렴결백하게 살며, 검소하게, 살고, 인민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 모두를 바쳐야 할 것이다. 이들은 막시즘의 사람들로 분류될 것이 아니다. 인도주의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금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은 진실은 자본주의의 가장 추악한 권력을 통한 부정과 부패를 일삼으면서 타인들이나 보수적인 사람들은 사회주의 이상을 잣대로 독특한 논리로 비판한다.

이에 반해 그의 생활을 면밀히 살펴보면 자신의 추악함이 드러나면 그의 사람됨과 삶은 전혀 반대다. 허위와 거짓을 사실처럼 달변으로 변명하면서 가장 추악한 에고이스트들의 논리를 전개한다. 이에 20, 30대는 순진하여 쉽게 유혹된다. 다만. 북한 김정은을 맹신하는 종교집단처럼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집단들과 그를 옹호한다.

집단 이기주의의 한 지체가 되어 녹음기처럼 아우성을 치는 집단들의 광란은 나라를 끝이 없는 절망으로 끌어 내리고 있다. 거짓의 가면을 쓰고 이것이 자기 얼굴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을 보며 자기의식에 갇힌 몽한적 행위에 분노를 금할 길 없다. 이 사람을 누가 신뢰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도 자신을 모르는 것 같다. 가면이 자기 얼굴인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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