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전문 강사 송계순 (부천웰다잉문화연구원)

[부천신문] 인생의 아름다운 삶이란 바꾸어 말 하면 잘 죽는 삶이다. 

‘죽음’은 사실 생각을 할 수도, 해 볼 수도 없다. 왜? 아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생각할 수도, 생각을 해 볼 수도 없는 ‘죽음’을 좀 더 생각해보려고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다보면 좋은 삶을 깨닫기 때문이다.

인간의 늙음은 사실 갑작스런 불청객이 아니다, 계속해서 누구나 늙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고령화 시대 늙어 장수하는 삶’을 인생의 두 번 사춘기의 삶으로 구분하여 사는 이도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면 삶이 더 즐거워지니까. 

 

우리는 ‘죽음’이 두려워서 오래 살기를 원하는가? 아니 오래살기를 위해 ‘죽음’이 두려운가? 
우리는 이‘죽음’을 드러내고, 바라보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보자. 살아있는 존재에게는 꼭 필요한 일(사건)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일상이지만, 죽음이라는 단어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건강, 수명, 노년, 복지란 단어가 그 자리에 등장하여, 죽음은 주변화하고 말았다”는 서울대 정진홍 교수의 말은 ‘죽음을 잃어버린 사회’에 대한 담론이다.

인간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삶이다. “죽음이 존재하는 사회가 온전한 사회요 죽음과 함께하는 삶이 온전한 삶”이란다. 그래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가르침은 아주 중요한 참다운 인간교육이다.

이 죽음이 가르치는 진리는 하나다. 죽어야 할 때 죽음으로서 영원에 이르는 생명이 유지된다. 죽어야 할 것이 죽지 않으면 죽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만다. 독일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말테의 수기』란 책에서 아픈 사람들이 병원으로 모여들어 똑 같은 침대 위에서 죽는다고 탄식을 하며 “이제 자신만의 고유한 죽음을 가지려는 소망은 점점 희귀해진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도 생사의 자기결정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법이 2018.2월부터 시행이 되고 있다. 이 법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죽음이 다가올 때 생명 유지 장치를 이용한 치료를 “원한다, 원하지 않는다.”를 본인이 밝혀놓는 제도이다.

인도의 「아툴 가완디」의 문제의식은 우리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고통스러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이 ‘죽음’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인간답게 죽어 갈 방법은 있다. 그럼으로 우리가 죽음을 피하고 미루는 데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웰다잉의 삶이다.

인간다운 마무리는 여기에서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준비하고 사는 삶이 최선의 삶이다.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럼으로 겨우살이는 준비를 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러시아의 사상가 톨스토이(1828~1910)는 말한다.

또한 ‘정신적으로 건강하기를 바란다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봐라. 죽음에 대해 인식하는 것이 정신 건강과 좋은 삶을 이끄는 한 가지 비결’이라고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성격과 사회심리학 리뷰)’지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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