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중세 유럽 귀족들은 사냥을 즐겼다. 함께 동행하는 사냥개가 반드시 있었다. 사냥을 나갔다가 번번이 사냥감을 놓친 사냥개는 도태가 된다. 성격이 포악한 사람은 즉석에서 사살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냥을 잘하는 셰퍼트를 새로 구입한다.

이것이 개혁이다. 목적에 걸맞지 않는 존재나 행위를 바꾸는 것을 개혁이라고 한다. 그리고 처음의 정신이나 행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개혁(Reform)이라고 부른다.

오늘의 검찰 개혁은 사냥을 할 용기와 사냥하는 기술이 너무 빼어난 셰퍼트를 다 죽이고, 도둑이 도둑질하며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짖고, 물고, 뜯고 한다고 해서 다 죽여버리는 것을 개혁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과수원 사과가 너무 탐스럽게 익었다. 과수원을 든든히 지키는 것은 탱자나무 가시 울타리와 사냥개 세 마리이다. 그런데 주인이 과수원 울타리를 정원수 가꾸듯 가지치기를 하고 나면 울타리는 기능을 상실한다. 잘 다듬어진 탱자 가시나무 위에 가마니 한 장 깔면 침대가 된다. 넘어가기가 그렇게 쉽다. 그리고 개는 아무리 많아도 괜찮다. 무를 굽기 시작한다. 완전히 불에 구워서 뜨거워진 무를 개에게 던지면 훈련된 사냥개는 덥석 문다. 그러면 뜨거운 무에 이빨이 꽂히고, 금방 개는 이빨이 모두 빠지고, 꼼짝달싹하지 못한다. 과수원에 들어가 사과를 마음대로 도둑질해도 주인이 보지 않는 한 톡톡히 재미를 볼 수 있었다.

지금하고 있는 추 법무는 탱자나무 가시를 다 전지하고 있다. 자기 마음에 들게 하고 있다. 검찰이 월성원전을 수사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한다. 국운(國運)이 달려 있다. 한국의 안보가 여기에 달려 있다. 그런데 수사한다고 해서 다 손발을 묶어 버린다. 뜨거운 무를 물고 있는 사냥개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옵티머스 사건이나 라임 사건이 마찬가지다. 법무부 장관은 국민의 종이다. 사법적 섬김이 중에 수장이다. 옵티머스 사건이나 라임사건으로 국민들이 금전적 큰 손해를 보고 망연자실하고 있다. 그런데 국민이 손해된 돈을 되찾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나 말씀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사법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오늘날 국민들이 큰 손해가 일어났다고 미안해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다만 국민의 재산을 갈취한 이 범죄 조직에 고위 당직자 내지는 청와대가 관련되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짐작컨데는 당정 간부를 수사하지 못하도록 해서 청와대를 지키고 고위 여권의 인사들을 지키고, 정권 누수를 막기 위해 수사하려는 검찰을 마구잡이 족치는 것이다.

어느 식당의 카운터 뒤쪽에 ‘종업원의 인건비는 식당 주인이 드리는 것이 아니고, 고객이 주시는 것이다.’라고 적어 놓은 것을 보았다. 식당 주인은 주인이 누구이며, 섬겨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데 추 법무는 오직 집권층과 의혹의 대상인 청와대만 지키기 위해서 탈법적 행위를 하고 있다. 지금의 민주당도 그렇다. 공수처법을 서둘러 만들고 있다. 생명을 걸고 국회도, 청와대도 공수처법을 만들려고 광분을 하고 있다. 그 공수처법의 입법 취지는 차지하고, 조직이 문제다. 여당과 권력의 시녀들만으로 조직하고, 3급 이상 공직자의 범죄 수사를 맡긴다고 하니 경찰도, 검찰도 손 못 대게하고, 무슨 수사를 집권자의 입맛대로 수사하고 처리하려는 꼼수의 조직이거나 대통령 자신에게 겨누어지는 칼을 빼앗아 빈손 만드는 공수(空手)사법 기관을 옥상위에 또 군더더기 옥상을 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국민들은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울산시장 부정선거 사건도 그렇다. 친구지간에 도와줄 수도 있다. 다만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동원해서 도와주었다는 것이 문제다. 공권력은 정의와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 져야 하는데 친구를 위해 사용 되었으면 배임이자 선거법 위반이 명료하다. 이것 역시 유야무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명백히 밝혀야 할 사안을 감추고 있는 추 법무의 행동은 이해 불가인 것이다. 오죽 불안하고, 겁이 났으면 광화문 광장을 아예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는 장으로 만들고 있을까? 정의로운 사람은 담대하고 용기가 있다. 범죄자는 약해진다. 문신을 온몸에 새기고, 근육질을 뽐내고, 칼을 가슴에 품고 다녀도 약하기가 그지없다. 권력을 두 손에 잡고 있어도 자신의 양심의 소리가 범죄한 권력자에게 찌르는 칼이다. 진실이 그들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국민이 고통당하고 있다. 전염병으로 어렵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하는 것마다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정치마저 상식에도 못 미치고, 눈에 뻔히 보이는 것을 야바위꾼처럼 속이고 있으니 분노는 더 치밀어 오른다. 80년대 최루탄 가스를 먹으며, 거리를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젊은이들 저 젊은이들에게 나라 일을 맡으면 정의와 공정으로 할 것이라 기대를 했다. 결국은 권력 잡고, 독재하고, 자기들이 그토록 타도했던 군사독재를 능가하는 독재를 하고 있다. 독재는 괜찮다. 얼마든지 하라. 제발 주권이나 제대로 지키면서 하라. 나라를 검은 손에 넘기기 위해 별 희귀한 재주를 다 부리고 있다. 평양 옥류관 냉면값이 얼마나 되는지 국민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누가 저 실성한 사람을 고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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