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 영 목사

윤대영 목사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한국전쟁이 휴전되던 그 해 겨울, 해달리 눈이 많이 내렸다. 폐허된 읍내는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었고, 부서진 집, 시체가 후미진 곳에 파묻혀 있는 아비규환이었다. 거지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식사 때가 되면 불켜진 집으로와 몇 사람씩 구걸을 하였고, 밤이면 상이군인들이 술을 먹고, 군가를 부르며, 거리를 떠들썩하게 했다. 읍내 언덕 위 교회당이 있었다. 창호지로 큼직한 별을 만들어 십자가 탑에 걸었고, 그속에 전깃불을 밝혔다. 그나마 빛이 비칠 때도 있었고, 꺼질 때도 있었다. 제대로 전기가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다. 교회에서 구제품을 준다고 하기에 체면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의 예배에 참여했다. 갓 5살짜리 소년이다. 그런데 한 어른이 털이 달린 빨간 코트에 황금색 단추가 달린 것을 주었다. 예배당 한켠에는 구제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교회 마당에는 두 사람이 악수하는 그림이 그려진 포대가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기쁜 마음과 신기로움에 들뜨게 했다. 빨강 코트를 입어보았다. 우선 병아리 우산 쓴 것 같았다. 양손을 주머니에 넣어보았다. 뭔가 손에 닿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그마한 크리스마스 카트였다. 빨강색 바탕에 금박으로 그려진 크리스마스 카드 뾰족한 종탑 예배당에 눈이 가득 쌓인 예배당 마당에 빨간 승용차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들이 손을 잡고 내려 예배당으로 가는 그림이었다. 유토피아를 보는 것 같았다. 신기롭기만 했다. 그런데 마음에 전율이 흘렀다. 나도 나중에 자라면 저런 가정을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이러한 가정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다. 교회당 십자가 꼭대기에도, 지붕에도, 교회 마당에도, 먼 산, 작은 산골짜기에도 눈이 내리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교회 오는 사람마다 자가용을 타고, 교회에 들어온다. 우산을 받쳐주며, 자녀들이 부모님과 함께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코트에 눈이 묻어 있는 것을 서로 털어주며,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의 카드에서 본 모습이 내 눈앞에 늘 펼쳐지고 있다. 우리의 일상된 유토피아의 삶을 누리고 있음을 보고, 가슴이 뭉클하여 울음이 왈칵 쏟아졌다. 무슨 중년을 넘은 남자가 울음을 터뜨리느냐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그날 빨간 코트 안에 만지작 그려지던 그 크리스마스 카드를 본 후부터 매일 새벽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카드 안에 가정이 우리나라의 모든 가정이 되게 해주시기를 바랐다. 기도는 드렸으나 우리는 처음엔 리어카를 몰고 다녔다. 그 다음은 경운기를 타고 다녔다. 어느 날 포니란 국산차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거리엔 벤츠 자동차가 흔하게 눈에 띈다. 여기까지의 과정에는 온갖 아픔과 서러움, 위기와 고비를 넘겨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생각 되어지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은 위대하다 라고 자부심을 느낀다. 대한국인들은 스포츠면 스포츠, 음악이면 음악, 미술이면 미술, 골프면 골프, 못하는 것이 없다. 세계적으로 탑을 달리며, 어느 민족, 어느 나라보다 우월하다. 남의 자식, 내 자식 할 것 없이 잘 되면 기쁘고, 잘못되면 애처롭다. 동포애가 진하다.

그런데 왜 정치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전혀 변한 것이 없는지 모르겠다. 고종이 전남 목포 앞바다에 있는 하의도를 담보로 하여 원수의 나라 일본에게 차관을 받아 공주의 결혼식을 올렸다. 자신의 목숨이 위태하다고 해서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해 살았다. 내관도 못 믿고, 대신도 못 믿어 미국 선교사에게 자신의 수라를 먼저 먹어보라고 해야 했고,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자신이 취침하는 침실을 지켜 달라고 애원을 했다. 선조가 통신사를 일본으로 보내서 전의를 살펴보라고 보냈으나 동인파 정사와 서인파 부사가 정반대의 보고를 선조에게 드렸으며, 부산 왜관(일본사람들이 살던 촌)에 사람들이 다 본국으로 돌아가서 일본의 침략이 확실해도 조정은 당파 싸움만 할 뿐이었다.

병자호란은 어떠했는가? 청태종 홍타이지의 즉위식에 축하객으로 보낸 두 대신은 “오랑캐가 황제가 무슨 황제냐”고 즉위식에 행패를 부리다가 군사에게 끌려 나가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 황제 즉위 후 조선과 형제 의를 맺자는 국서를 주었건만 청나라 영빈관에 내팽개치고 온 것이 발견되어 분노한 청황제가 쳐들어와 남한산성에서 인조의 이마가 터지도록 항복과 복종의 절을 올려야 했다. 백성 35만명이 노비로 끌려갔다. 도대체 왜 우리는 권력 관리를 그렇게도 못하는가? 국민이 죽어가고 있고, 경제는 모두 폐업을 하는 처지에도 백신은 구할 생각은 뒷전이고, 공수처를 만들고, 북한 전단지 살포 금지법, 5.18 역사 왜곡 처벌법 등 헌법 정신에 반하는 세계 기운에 역행하는 정치를 하면서 자신이 황제나 된 듯한 착각에 빠진 대통령이 같이 보인다. 국가의 적을 이웃이다 하고, 참 동맹국을 적이라 하니 이 또한 오늘의 어려움을 자초하는 것이다. OECD 국가 중에 코로나19 백신 준비가 꼴찌다. 국민들은 고추대차가 좋다고 이 엄동설한에 벌판을 헤매게 하고, 5인 이상 모이지 말라고 하니 사업자들은 모두 폐문하고 있다. 북한과 꼭 빼닮았다. 이것이 바라던 바인가?

올해도 크리스마스는 찾아왔다. 어린 시절 코트 주머니의 크리스마스카드대로 이루어졌지만, 이 환상을 올해는 깨어지고 말았다. 교회는 문을 닫고, 예배드리지 못한다. 모든 이들에게 주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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