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세계 여성들이 피임권은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여성은 인간을 낳는 가축이 아니다.’ 여성이기 전에 인격이다. 여성은 존경받고 사랑받는 어머니가 될 수 있다. 누가 여성을 가축이라고 하는가? 사람은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하기 전에 인격이다. 남녀가 사랑을 하여 자녀를 낳지만 사랑은 인격과 인격이 사랑을 한다. 다만 사랑의 파트너로서 남녀가 있고,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는 것이며, 이로 인하여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이다. 나는 나다. 그리고 너는 너다. 그러나 사랑하면 우리가 되고, 우리를 넘어 너는 왜 내가 아닌가? 가슴을 치고, 나는 왜 너가 될 수 없는가? 몸부림쳐진다. 여성과 남성이라고 구분하기 전에 사랑이 없는 남녀는 결코 생명을 잉태하거나 태어나게 해서는 안된다.

낙태는 법으로 정할 문제가 아니다. 낙태는 사랑한 사람들이 정할 일도 아니다. 누구의 권리로 정할 수 없다. 생명은 그 자신이 생명이다. 생명의 주인은 생명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 생명의 청지기들이다. 애완견을 키우면서도 스스로 집사라 하지 않는가? 두 사람이 사랑을 하면 한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사랑을 하면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 책임을 회피하고 나의 태중에 24주 이전까지는 여성의 임신 결정권을 보장한다는 판결이 있다. 이 판결을 뒤집는 미연방대법원이나 모두 자신들이 결정할 수 없는 영역의 결정을 법으로 하고 있다. 사형선고를 금지하는 것 역시 생명은 법으로 판단할 결정권이 없다는 뜻이다.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서 하여야 할 일들이 많다. 그러나 어떤 중요한 일보다도 절대 중요한 권리이자 의무가 사랑이다. 사랑을 했으면, 그 열매인 생명도 사랑하는 것이다. 관점마다 다를 수가 있지만,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자기 인생의 황금기를 다 바쳐 자녀를 양육한다. 그리고 그 자녀는 자라서 부모의 둥지를 떠난다. 부모는 빈 둥지가 되었을 때, 밀려오는 자기 자신의 지난 날의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이미 다 자란 자녀는 떠나고 자신은 홀로 있다. 내가 무엇을 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그 결과가 빈손 같은 허전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녀가 임신 되었을 때부터 주는 생명의 신비와 호기심, 그리고 태아시절 나눈 모든 행동은 임산부에게 행복과 자존감을 한없이 높여준다. 분만의 고통은 죽음과 같지만, 태어난 갓난아기의 성장을 통해 계수할 수 없는 사랑과 기쁨과 보람과 위로를 받는다.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자녀가 부모에게 주는 사랑과 기쁨 역시 더없이 소중하고 크다. 인간이 만든 문명과 문화를 향유하는 그 어떤 기쁨과 행복과는 비교할 수 없다. 자연이 주는 다양한 아름다움과 평안하게 품어주는 신비로움과 생명을 살리는 에너지를 공급받는 혜택도 행복 중에 큰 행복이다. 그러나 결코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을 넘을 수 없다.

말은 사람이 한다. 그러나 사람을 말하게 하는 것은 그가 처한 상황일 수도 있다. 여성은 인간을 낳는 가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지나치게 극단적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역사적 상황이 있었다. 1965년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는 절대적 권리를 행사하고 있었다. 국가의 자산이 자녀라고 생각하고, 여성으로 하여금 낙태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여성 인권을 무시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이나 자녀를 적게 낳는 여성에게는 세금을 무겁게 물리고, 비밀경찰을 동원해서 여성의 피임을 방해하였다. 산부인과, 소아과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아이를 강제로 많이 낳게 하므로 유아 출생률은 높아졌지만, 유아 사망률은 145%나 증폭한 일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말이므로 무조건 비판할 수도 없다.

한국은 미래를 준비해야 할 정책들이 많지만, 국민의 자녀 낳기 정책은 시급하면서 꼭 긴요한 정책이다. 한국 여성을 모독하는 정책도 있었다. 경제적으로 지원하면 자녀를 낳을 것이다라는 정책이다. 이미 한국 여성이 경제 도움 때문에 임신을 하고, 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은 인격 모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 스스로 판단하여서 낳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에서는 사상교육을 통해 철저한 공산 사상을 가지게 되면 신인(new man)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인격을 바꾸는 것은 국가의 영역이 아니다. 가정에서 자녀 양육을 하면서부터 유능한 사회인과 행복할 줄 아는 부모가 되도록 키워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 가정은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어린 시절부터 양육한다. 결국 유능한 사회인만 키우는 것이다. 행복할 줄 아는 부모들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향유한다. 이 모습을 자녀들이 보고 있다. 느끼고 있다. 배우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습득하게 된다. 자녀를 낳고, 가정을 이루어 행복한 화원을 이루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터득하게 해야 한다. 대다수의 가정에서 사랑이 행복케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행복케 한다고 배운다. 이러한 상황과 환경에서 자라면 부모가 되지 않으려고 한다. 나도 행복한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할 리가 없다. 개인주의자가 되어 사회에서의 자기 위치, 그리고 사회적 자기 역할, 사회적 보상을 추구하는 인격으로 양육되면 결혼, 임신, 분만, 육아는 자신의 성장 사닥다리를 치워버리는 것 같다. 가정에서의 자녀 양육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자녀 양육에 국가적 도움과 노력이 절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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