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공무원 주도 복지는 복지 삼각지대를 메꿀 수가 없다. 공무원은 복지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복지부동이다. 자신의 호신(護身)이 우선이다. 더군다나 공무원은 집행원칙이 있다. 합법적이냐는 것이다. 그리고 적법절차냐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에 길들여진 인격은 복지 사업을 책임질 수가 없다.

난방설비 공사를 하는 중소기업이 있었다. 난방설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배관의 완벽한 설치이다. 주로 배관을 통하여 흐르는 것은 스팀이나 온수, 그리고 가스이다. 어느 한 곳의 빈틈이 생겨도 심각한 건물의 사용이 불가한 원인을 제공한다. 배관을 담당하는 직원은 천층만층이다. 학교에서 마땅히 가르치는 과목도 아니다. 사설학원에서 배우거나 무작정 공사현장에 투입되어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고 보니 배관의 누수 현상이라든가 가스의 유출 내지는 스팀이 새는 경우가 생긴다. 공사의 부실도 문제지만, 공사가 하청에 하청을 통하여 발주를 받다 보니 결국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공사금액으로 하청을 받는다. 공사대금 역시 약속은 없고, 기약도 없다. 만약 공사대금을 지나치게 다그치면 그 다음 공사 협력업체에서 제거해 버린다. 결국 먹이사슬의 마지막 자리에 있는 최약자로서 고통을 당하다가 부도가 나기 일수다. 맨 먼저 대표는 잠적을 한다. 그리고 대리인을 시켜서 빚잔치를 한다. 실상 빚잔치를 해봐야 건질 것이 없다. 파이프 조각만 뒹구는 것이 회사의 현실이다. 자신을 숨기다 보니 주민등록지를 옮기지 않아 결국 말소가 되고, 건강보험은 고사하고 모든 관(官)과의 관계를 끊을 뿐만 아니라 친척, 친구의 관계도 끊어져 버린다. 주민증 없는 근로자가 되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막노동을 하게 된다. 신용카드는 고사하고 수고한 노동의 인건비도 현찰로 조금 받아 연명을 해가는 것이 보통이다. 부인은 처음에는 조금 버틴다. 남편 없이 조그마한 반지하 방 하나 얻어 자녀와 버티다 못해 이혼을 하는 경우도 많다.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뒷문으로 달아난다는 영국의 속담이 있다. 사채가 있으면 더 고통스럽다. 폭력배를 앞세우고 찾아 나선다. 이 잡듯 잡는다. 국세, 지방세는 죽는 날까지 따라다닌다. 소위 대신 돈 받아 주는 일꾼들은 악착같이 찾아다닌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오직 한 가지 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한다. 자동차를 몰고 높은 한강 다리에서 차를 탄 채로 뛰어들고 싶다. 현재 이렇게 잠적해 사는 사람들은 적어도 현재 삼백만 내지 오백만은 될 것이다. 수원의 세 모녀 같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고 하는 것은 건강보험이 한 달에 만원이라도 내지 못한다는 것은 돈이 없어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흔적이 드러날까 해서 안 내는 것이다. 건강보험을 내지 않는 사람이 70만이라면 그 식구를 4명으로 추산하면 거의 삼백만이 된다. 건강보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복지 사각지대 내지 죽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교회를 찾아오는 경우도 있어 방문해보면 강제 자연인, 아무렇게나 비닐하우스를 치고 사는 사람도 있다. 교회가 주민센터를 찾아간다. 이런 적법절차로는 도울 수 없는 사람을 복지 담당 공무원에게 알려달라고 하면 개인의 신상정보라서 알려줄 수 없다고 딱 잡아뗀다. 관주도 복지사업은 한계가 있다. 종교단체나 인정 많은 자원봉사자, 기부자들에게 맡기면 어떤 흔적도, 신상 서류도 없이 형제처럼 도울 수 있다. 복지가 잘 되는 나라에 가보면 민간 복지 주도의 국가들도 있고, 종교 중심 복지 사업도 많이 하고, 자원하는 시민단체도 받아서 한다. 공무원은 심장은 있으나 뜨겁지 않다. 냉담하다. 자기보다 더 가난하고, 복지소외자를 보살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가장 게으른 사람이 공무원 한다는 말도 있다. 신앙인이나 기부자, 자원봉사자는 가슴이 뜨겁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있어서 자원복지, 봉사, 그리고 오른손이 하는 선행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을 덕목으로 알고 있다. 그물로 강물을 담으려는 법(法)대로 복지를 하고자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도 정부는 공무원이 복지를 맡아서 해야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교회 마당에 낮 12시부터 무료로 나누어주는 라면 두 봉지를 받으려고 장애우를 비롯하여 휠체어를 타고 오는 민얼굴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자신의 민얼굴을 내밀고, 라면 두 봉지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극빈한 상황이다. 교회는 성전을 팔아서라도 가난한 이웃의 마음 안에 성전을 짓자고 다짐을 하고 있다. 냉담한 공무원의 복지는 복지 음지를 양지로 만들 수 없다. 만약 가슴이 뜨거워져서 복지 사각지대나 법적 근거 없는 사람에게 공무집행을 하면 그 공무원의 내일은 아무도 보장하지 못한다.

정부가 과감히 고정관념을 깨고 자원하는 민간단체나 종교기관에게 복지의 사각지대를 맡겨서 할 수 있도록 복지 시스템(조직) 개편을 하여야 한다. 현 조직으로는 아무리 대통령이 독려해도 개선될 수가 없다. 그물에는 물을 담을 수가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만약 뜨거운 민간인 자원봉사자나 뜻 있는 종교단체에 맡기면 스스로 예산을 만들고, 기부하는 봉사자는 정이 많고, 사랑이 많다. 민간 자원을 정부가 개발하고 구현해 가면 국민 참여가 국가 예산 절약하고 오히려 복지의 질을 높여갈 수 있다. 복지는 뜨거운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냉담한 법 집행하듯 복지를 해봐야 복지가 될 수 없다. 로봇이 아기를 키울 수 없는 것처럼 아기는 엄마가 길러야 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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