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성경 창세기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취하는 일이다.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보니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러워 보였다. 특히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선악과를 따먹었다. 결국 에덴에서 쫓겨났다. 노아시대 때 홍수가 일어나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에 대한 대처는 바벨탑을 세워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위해서 탑을 쌓아 하나님께 도전하자고 했다. 이것이 인간의 탐욕과 교만을 표현한 뜻일 것이다.

AI는 지금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인간이 더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한 의도이다. 이젠 챗GPT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음악 혹은 문학, 예술 분야까지 AI가 사람의 영역을 대신하고 있다. 몇 주에 완성할 미술작품을 단 몇 분 만에 그려낸다. 미국의 문학 작가협회에서 AI가 만들어내는 조잡한 문학은 문학이 아니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과연 AI의 문학작품을 작가와 같은 시각으로 볼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지금 가장 실직(失職)될 우려가 많은 직종은 전문직이라고 한다. 전문직이면 인류의 숱한 직종 중에 VIP 직종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단순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도 마찬가지이다. 미국과 중국은 AI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 틈새를 이용해서 한국이 AI 세계 시장을 점령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의 삶의 질의 향상은 우리가 우리 생각대로 할 때, 삶의 질이 좋아진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OECD 국가 중에서 서울 시민들이 가장 돈을 사랑한다는 통계를 보도하였다. 그러나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것도 서울 시민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각자 생각과 잣대대로 판단하리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문명이 주는 편함을 가감없이 향유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한국의 반도체가 세계에서 점거하는 율이 그리 크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의 전자제품은 반도체로 완성품을 만들어 공급한다. 지금 가전제품 중에서 한국 제품이 가장 우수하고, 편리하다고 인정받고 세계 도처에서 한국의 제품을 쉽게 만날 수가 있다. 우수한 민족이지만 한편으로는 문명의 이기(利器)에게 자신의 영역을 너무 빨리, 그리고 많이 내어주는 것 같다. 결국 타자(자기가 아닌)에게 의존, 이용하므로 자신의 삶이 편해지기를 바란다. 이것이 행복과 정비례할까? 자가용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한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비행기의 일등석을 타야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행복은 자신의 행복 감흥력과 깨달음의 범위가 결정된다. 농사하는 사람의 행복은 씨를 뿌리고, 잎이 나고, 열매를 거둘 때이다. 땀과 수고로 이룬 결정체를 놓고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은 스스로 힘든 산행을 통해서 정상에 오르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행복에 대한 느낌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한 행복을 느끼는 감성지수마다 다르며 행복 경험세계의 폭과 높이에 따라 다른 것이다. 슬퍼서 눈물을 흘리면서 행복해 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국가가 국민을 섬기는데 있어서 과학과 산업 중흥을 통해서만 행복을 누리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관리하고, 자신의 인격으로 절제할 수 있을 때, 행복을 만들 수 있다. 이러한 국민을 육성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 아닌가? 지금 학교 교육은 돈 버는 방법만 가르친다. 돈 버는 정보를 파는 것이 교사이고, 이 정보를 사는 측이 학생인 것이다. 당연히 돈을 벌어야 살 수가 있다. 그러나 생계형 인간에서 행복한 인간으로 보다 더 진보시켜주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GDP의 상승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보다 도덕적인 인격으로 교육하고 도덕적으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한 여인의 살인 동기가 ‘죽여보고 싶어서 죽였다’이다. 물론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오징어 게임이 어디에서 발상되었을까? 한국적 상황이라고 본다. 너 죽고 나 산다는 세상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국민 각자가 각각의 원수가 된다. 국민 전원이 각개 생존전투를 한다. 이데올로기가 시장경제든, 통제경제든, 사회주의든 자유 자본주의이든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사회와 그 이데올로기에 사는 사람의 도덕성이 문제이다. 국가의 도덕성이 사회의 질서와 그 이데올로기를 효율성 높게 행사하게 한다. 오직 도덕적 인격만이 제도나 법률이나 사회적 문화보다 우선되는 것이 사람의 사람됨이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자화상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군상(群像) 되고 보니 이는 유물론(唯物論)자와 궁극적 목표는 동일하다. 북한은 북한 인민을 굶기고, 미사일만 쏘아댄다. 북한의 한 여인이 굶어 죽으면서 남긴 유서에는 ‘조선에 태어남을 후회한다.’라고 적었다. 사회나 국가 지도자의 도덕성은 전 국민을 행복해하느냐 아니냐를 결정한다. 대한민국은 정신문화와의 성숙성과 도덕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국가 산업의 융성도 좋고, 국방력도 중요하고, 외교 활성화도 좋다. 그러나 국민이 도덕적이지 못한 나라는 불행한 나라이고 불행스러워하며 사는 국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AI가 문제가 아니다. 그 AI를 누가 점차 진화시키느냐와 누가 운용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자기의 탐욕을 절제할 수 없는 인격 즉 비도덕적 개인이나 국가는 AI 사용을 할 자격이 없다. 결국 AI로 하여금 자신의 편리 욕구를 채우기 위해 업그레이드하다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꼴이 되는 것이다. 국민의 도덕성 공고를 위해 국민교육 쇄신이 되어야 한다. 이 국책 과제는 과학 문명의 발전보다 한 발 앞서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인간 도덕성이 AI를 통제할 수 있을 때 휴먼 AI가 되는 것이다.

 

저작권자 © 부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