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검은 안경을 끼고 공식 석상에 나타난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박정희 소장이 처음일 것이다. 그에게서 받은 또 다른 인상은 국정의 수치화이다. 이를 차트로 보이면서 설명하는 것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정치인들이 대다수 그러하듯이 국민 감성을 자극하는 구호와 연설로 미래를 제시하고 설득했던 시절이다. 지금도 잊지 못할 그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구호이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얼마나 자극적인가? 그런데 박정희 군사혁명 정부는 1962년에서 1996년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실행된 경제 발전계획을 제시했다. 그 후부터 사회개발이라 수정하였으며, 5차부터는 경제 사회발전 5개년 계획(1981~1996년)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아마 그 당시 국민들은 수출이란 용어도 생소했고, 특히 모든 발전 자료를 수치로 보여 주었다는 것에 큰 신뢰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수치란, 객관적이고, 가늠의 기준이 있고, 인식과 예측을 명료하게 한다. 특히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과학적인 것 같은 합리성이 있어 보이는 것은 틀림없었다. 모든 국가의 정책을 수치로 표시할 수는 없지만, 박정희 정부가 내건 슬로건이 ‘잘살아보세’인 것을 보면 잘 산다는 것이 수치로 표현될 경제적인 원인으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국민 모두에게 인식되기 시작했고, 새마을운동을 시작하여 더욱 그러하였다. 새마을운동 주제곡의 가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이 노래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작사, 작곡했다고 한다. 가사 내용에는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란 대목은 여실히 경제발전과 행복지수는 정비례한다고 정의하고 있고, 잘 산다는 정의는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는 것이라는 정의도 내리고 있다. 물론 정부의 정책이 국민의 정신세계와 윤리와 가치관을 모조리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중의 가치관이 항상 본능 위주라는 것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 왜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했는가? 왜 6.25 한국전쟁에서 북한이 대남혁명 사업이 성공하지 못했는가? 라는 것에 대한 해답 중 하나가 토지개혁이었다. 북한의 토지개혁(1946. 3. 5)은 대한민국보다 먼저 수행되었다. 그러나 농토를 농민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농토는 공산당으로 돌아가게 했다. 남한은 이승만 대통령이 토지를 농민들이 소유하게 하고, 유상으로 분배하였다. 그러나 남한 남로당의 무력화시킨 것은 분명히 토지개혁이었다. 그리고 베트남은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들이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이었다. 베트남은 토지개혁을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지주, 부르주아, 소작인, 프롤레타리아, 집단 충돌로 결국은 호치민이 승리하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기로에 서 있다. 국민 가치관이 경제에 치중되어 있다. 국가의 정책 역시 국민들에게 경제적으로 유익하게 해주는 것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 모든 표기는 수치이다. 광화문 사거리에 가보라. 저마다 구호를 외치고, 이마에 띠를 두르고 외치는 소리는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한 이기 집단이다. 결국 보다 더 많은 경제적인 수익을 달라는 구호이다. 5.18 광주 민주 의거, 세월호, 이태원 참사, 역시 돈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의 전통은 생명의 문제만큼은 신성시하고 초월적 세계와의 연관을 지어 생각해왔다. 지금은 전혀 달라졌다. 보이는 것에는 음양이 있다. 마치 나무가 자라면 그늘도 자라듯이 수치를 중시하는 가치 기준으로 삼는 경제 중심 사회는 빈부의 어두운 그늘을 만든다. 즉,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 갈등은 생기기 마련이고, 가진 자들의 성숙한 품성과 인격, 그리고 절제와 겸양이 없으면 오만해지기 마련이다. 갖지 못한 자, 여기서 갖지 못함은 비단 경제적으로 수치로 갈라놓는 것이 아니다. 자기 스펙을 만들어가는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 박탈감으로 발전하고, 분노와 증오로 바뀔 수 있으며, 소외감으로 오는 열등의식은 사회와 자기 사이에 차단벽을 쌓고 자기 억제와 주관적 비하를 하다가 정신 건강을 잃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소위 조현증이라고 하지만 이 병세는 자기 정신 위생 관리의 소홀이나 실수로 오는 질환도 있지만, 대부분이 상대적이며, 정의롭지 못하고, 공평하지 못한 사회로 인한 발병 내지는 거대한 순환(문화·문명) 틈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흉기를 들고 타인을 증오하고 상하게 한다. 자기 울분이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 가난함, 소외감, 외로움은 그런대로 자신의 감정을 자신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준법 경쟁을 하지 않고, 불공평 자리 상승과 땀 없이 수익을 기하급수로 올리는 경우 참을 수 없다. 정상적 경쟁에서 밀렸다는 인식은 자기를 절제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밤잠을 자지 않고, 공부를 해도 상대적으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함은 그토록 믿었던 교사와 학원이 돈으로 주고받는 킬러 문제들 때문이라고 생각되면 핵폭탄처럼 터진다. LH의 황금알 낳는 부정, 숱한 비리의 핵심 인사가 정치 무대에서 거들먹거리는 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말로 호사하는 사람들, 부모 잘 만나 호의호식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사회의 기득권자로 자리잡고 있는 한, 이유 없이 흉기로 남을 다치게 하고, 협박과 공갈 정보를 뿌리는 행동을 막을 수 없다. 이젠 그늘에 빛이 비치게 하기 위해서 부의 분배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수치로 계급화하는 사회에서 겸허, 절제, 베풂, 내려놓음으로 느끼는 감정을 행복 가치로 손뼉 친다면 정신 가치사회가 동틀 것이다. 법이나 공권력으로 수치 계급사회 불균형으로 인한 충돌은 해결할 수 없다. 종교와 교육, 그리고 가정이 비상한 정신가치 함양에 결단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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