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
윤대영 목사

[부천신문] 세계는 대한민국을 빠른 기간에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격찬을 한다. 민주화는 정부수립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이후 자유당이 이승만 대통령을 중심으로 집권하던 시절, 동시에 야당이 된 민주화를 당령으로 출발한 민주당이다.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를 기점으로 4.19 학생의거가 일어난다. 그 당시 중학생까지 거리에 나섰다. 당시 고(故) 최인규 내무부 장관은 경찰에게 발포 명령을 했다. 그리하여 다친 학생들이 많다.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민주화는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시작했다. 지금의 ‘서울의 봄’ 영화를 방불케 하는 군사 쿠데타였다. 이에 맞서서 민주화 운동은 대학가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1980년도에 가장 활약을 많이 한 민주화 주관자들은 전총련, 한총련이었다. 이 한총련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 정치에 입문하고, 언론과 법조계, 교육계에 포진하면서 민주화가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한 가지 민주화 운동의 한국적 특징은 분단된 나라이다 보니 결국 거대한 군사 권력에 맞서기 위해서 국가의 적인 북한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반공법과 보안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사파가 생겨나고, 친북세력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임수경을 북한에 보낸 것도 한총련 시절이다. 결국 민주화가 탈법, 그리고 반국가 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여기에다 군사독재 폭거에 맞서다 보니 자신들도 폭력단체로 변해 있음을 본인들은 모르고 있었다. 대학 캠퍼스 안에서 생명을 유린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1984년 9월 서울대 운동권 학생들이 민간인 4명을 프락치로 몰아 감금, 각목으로 구타하고, 물고문을 했다. 1989년 10월 연세대, 고려대 운동권 학생들이 설인종 씨를 안기부 프락치로 몰아 각목으로 폭행, 고문으로 숨졌다. 1997년 5월 남총련 간부들이 전남대 이종권 씨를 경찰 프락치로 몰아 쇠파이프 등으로 고문 폭행했다. 1997년 6월 한총련 간부들이 한양대 이석 씨를 경찰 프락치로 몰아 15시간 동안 구타 후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보니 이러한 사고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민족은 한 민족이나 나라는 두 나라라는 것을 잊은 것이 결국 반국가적 세력이 되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음이 개탄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짧은 시간 내에 오늘의 민주화가 있었던 것은 비단 민주 운동가들의 공로만은 아니다. 전 국민이 함께 공감하고, 협력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 민주화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 보상은 지금 안갯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이 문제를 거론도 못하도록 법까지 제정해 두었다. 세월호 사건도, 이태원 사건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혹시 슬픔에 빠진 유족들에게 많은 보상을 받자면 현 정부에게 압력 행사를 해야 된다고, 민주화 운동가들의 상담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개인의 슬픔을 국가 책임 논리와 국가로 인한 피해자로 만들고, 국가로 하여금 거액의 보상을 받게 하며 자신들은 의로운 조력자가 되어 자기편으로 끌어드린다면 국가의 보상은 전 국민의 혈세이므로 다른 국민의 어깨에 그 책임을 전가 시킨 것뿐이다.

경제 성장은 전 국민이 모두 눈물과 땀을 흘렸다. 이미 다 알고 있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 독일 국민에게 한국인의 착한 심성을 심어준 연유로 오늘의 경부고속도로가 생겨났다. 젊은 처녀들이 시체를 닦고, 노령환자와 중환자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생명을 사랑하여 자기 환자를 자신의 부모처럼 섬기는 희생을 기억만 해도 눈물을 앞서게 한다. 운동권의 최루탄에 의한 눈물과 비교할 수 없는 눈물이다. 베트남 참전으로 인한 피 흘림과 헌신, 그리고 중동 노동자들의 땀 흘림, 농민까지 수출을 한다고 좋은 것은 내다 팔고, 찌끄래기만 먹었던 절제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수출의 원가를 줄여야 경쟁력이 있다. 이를 악용하여 노동자의 땀을 훔친 악덕 기업인들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도 나도 모르게 세계에서 과하게 말하면 6번째 국가가 되었다. 이 사실은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해냈어도 놀랄 수밖에 없다. 국민 성격상 빨리빨리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지만, 찬란한 영광 뒤엔 어두운 면도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농어민이 우리의 국가 경제 성장에 기여한 공을 알아달라고 말하던가? 어느 산업인인 국가가 우리의 경제 성장의 기여도를 알아달라고 법을 제정해 달라는 사람이 있던가? 왜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사람들만 예우하고, 보상받으려고 하는지 알고 보면 정권을 잡은 자들이 운동권 투사들이기에 집단 이기주의적 특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자기 공로로 자손만대 보상으로 유익을 보자는 것은 운동가답지 못한 처사이고, 비민주적 발상이다. 자신들이 있게 하기 위해 부모라는 이름의 국민들이 있었고, 민주화 운동에 온 종교계와 국민들이 함께 한 탓에 자신들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 공을 낮추지 않고, 민주화의 동기가 집권이었으면 분명히 쿠데타이다. 이젠 동기가 변질되어 국민을 착취하는 착취자로 변신 되고 말았다.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 성자(聖者) 반열에 서려고 하는 오만은 국민들의 존경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오만하고 이기적인 투사가 되어 버렸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민주화 인사들의 평화론으로 국민의 머리에 기울어진 끓는 가마(核)를 머리에 이고 살게 함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은 전적으로 민주 운동가들의 책임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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